DJ정권 최고 실세들이 연루된 대북 송금 사건을 1차 수사기간에 완벽히 마무리 짓기는 어렵다는 게 주위의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염두에 두고 수사기간 연장을 반대하는 입장을 거듭 표명하고 있지만, 어쨌든 특검팀은 150억원 비자금 등 새로운 의혹까지 불거진 마당에 수사 연장은 불가피하다는 ‘원칙론’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특검의 최대 목표인 대북 송금의 성격이 아직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은 점이 연장승인을 요청한 핵심이다. 특검이 확보하고 있는 다양한 진술 및 정황과 핵심 관계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현대의 비자금 150억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도 수사 연장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더구나 당사자인 박 전 장관은 관련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상태여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자금 추적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상태다. 문제의 자금을 세탁한 김영완(金永浣)씨와 사채업자 임모씨는 미국에 체류 중이다.
특검이 낸 연장승인 요청서에는 김 전 대통령 문제가 직접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없이 대북 송금 사건의 결론이 내려지기는 어려운 상황. 따라서 특검은 수사기간을 연장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방식을 좀 더 신중히 검토할 수 있는 ‘시간벌이’를 기대하는 측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실무적으로 특검팀은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특검팀이 사법처리 대상으로 꼽고 있는 인물 17명 가운데 기소한 사람은 이기호 이근영 박상배 최규백 김윤규씨 등 5명뿐이다. 이 사건의 핵심인물인 임동원(林東源) 전 국정원장,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등에 대한 사법처리를 위해서는 더 확인할 대목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특검팀은 연장승인 요청과는 별개로 수사 정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연장을 거부할 경우 특검팀은 지금까지의 수사결과를 토대로 17명의 관련자들 중 핵심 관련자를 추려 일괄 기소할 가능성도 있다.
또 이 경우 특검팀은 수사를 마무리하고 이들에 대한 공소유지를 맡는다. 150억원 비자금의 행방을 포함해 특검팀에서 끝내지 못한 부분은 검찰에 넘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수사기간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특검팀은 돈의 성격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대북 송금과 정상회담 대가성 여부 등 사건의 최종 판단을 법원에 맡길 가능성이 크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