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銀파업 고객들 피해 …"주택청약 해야 하는데…" 발동동

  • 입력 2003년 6월 19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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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인출기 사용법을 몰라 한참 동안 돈을 못 꺼냈는데 알고 보니 안에 돈이 한 푼도 없는 겁니다.”(자영업자 김모씨·50)

“오늘까지 어음결제를 해야 하는데 주변의 점포가 모두 문을 닫는 바람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겨우 찾아낸 창구에서도 3시간이나 기다렸습니다.”(무역업체 직원 이모씨·34·여)

조흥은행 총파업이 이틀째 계속되면서 고객들의 불편과 피해도 커지고 있다.

19일 문을 열지 못한 점포 수는 모두 179개로 전체 476개의 37.6%에 달했다. 문을 연 점포도 인력 부족 등으로 업무가 원활히 진행되지 못해 고객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조흥은행 이용규(李容揆) 노조 부위원장은 “점포에 일부 남아 있던 계약직 사원들도 파업에 동참하고 있어 지점장 혼자서는 업무가 불가능한 상황일 것”이라며 “실제 운영되는 점포는 70여개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서울 영등포지점 현금자동출납기(ATM) 코너에는 개점시간부터 고객 20여명이 줄을 섰지만 6대의 기계 가운데 1대는 이미 현금과 수표가 바닥이 난 상태. 서울 낙성대지점에서도 4대 가운데 2대는 돈이 떨어져 출금이 불가능했다.

조흥은행을 통한 아파트 청약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흥은행 청약통장 일부 가입자들이 18일부터 시작된 현대건설의 ‘신평촌 현대홈타운 아파트’(경기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의 청약 접수를 하지 못한 것.

이 아파트의 정홍민 분양소장은 “어제와 오늘 내내 ‘조흥은행 창구에서 청약접수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며 “금융결제원에 해결방법을 문의했지만 ‘현행시스템으로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조흥은행 노조원들의 파업은 계속되고 있다.

노조측 주장에 따르면 지방에 남아 있던 일부 인원이 본점에 재집결해 인원수는 7000여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틀 동안 밤을 새운 탓인지 상당수가 지친 모습이었다. 사무실 안은 물론 복도에까지 누워 자는 노조원이 많았다.

이날 조흥은행 매각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는 무리한 매각 강행을 중단하고 독자생존 보장 약속을 지키라”고 주장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파업 합법인가 불법인가▼

이틀째 계속되고 있는 조흥은행 노동조합의 파업은 불법인가, 합법인가.

정부는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단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는 반면 노조는 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합법 주장의 근거는 지난해 11월 노조가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하고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치는 등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는 것.

노조는 지난해 6월 2002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은행측에 요구했지만 교섭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노조는 11월 5일 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하고 12일에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조흥은행 노조 박태윤 정책부장은 “은행의 매각 합병 등에 관한 사항은 당시 요구안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쟁의행위를 결의한 진짜 목적은 매각 반대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는 노무현(盧武鉉) 이회창(李會昌) 두 대통령 후보가 조흥은행의 독자생존을 약속함에 따라 12월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파업 철회를 선언하고 같은 달 16일 은행측과 임단협 안에 합의했다.

조흥은행의 상급단체인 한국노총도 노 후보의 노동특보였던 박태주 현 청와대 노동개혁 태스크포스 팀장이 지난해 11월 28일 조흥은행에 보낸 ‘정부의 일괄매각 방침은 철회돼야 한다’는 내용의 문건을 19일 공개했다.

하지만 정부가 최근 일괄매각을 강행함으로써 독자생존 약속을 번복했기 때문에 지난해 ‘12·16합의’는 원인 무효이며 쟁의 절차도 유효하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

이에 대해 정부는 조흥은행 파업의 목적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범위를 벗어났을 뿐 아니라 절차상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노동조합법에 노동쟁의의 정의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규정하고 있는데 노조가 주장하는 일괄매각 저지, 독자생존은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 말 노조가 밟았던 쟁의 절차도 ‘12·16합의’에 따라 효력이 소멸됐다는 논리다. 노동부 관계자는 “개인적으로는 노조의 사정도 딱하지만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편 전국철도노조도 정부가 ‘철도구조개혁은 노조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추진한다’는 4월 20일 노정(勞政) 합의를 파기했다며 별도의 쟁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28일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또 한 차례 불법파업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盧대통령 당선자시절 발언 청와대 미숙대응 파업불러”경실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9일 “조흥은행 노조가 은행 매각에 반대하며 돌입한 파업은 설득력이 없다”며 비판했다.

경실련은 이날 성명서에서 “조흥은행이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유동성 위기를 넘긴 만큼 정부가 조흥은행 매각을 조속히 마무리해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하고 경제의 불확실한 여건을 개선하려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경실련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노조 대표를 만나 독자생존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한 것과 노조와 합리적 논의가 없었던 청와대 주최 매각관련 토론회를 연 것 등이 노조의 무리한 주장을 조장하고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며 정부의 대처 방식도 비판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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