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원수관계’라니 막가자는 건가

  • 입력 2003년 6월 19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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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온건 노선을 걸어온 한국노총이 조흥은행 파업을 밀어붙이면서 초강경 노선으로 선회해 갈등의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조흥은행) 매각작업이 중단되지 않으면 참여정부 임기 말까지 원수관계로 가게 될 것”이라는 위협은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국민은 정부에 대한 특정 집단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노사교섭은 노사가 사안별 또는 단위사업장별 쟁점을 두고 협상을 벌이는 과정이다. 주5일 근무제와 같은 공통 쟁점도 있지만 단위사업장 고유의 쟁점도 있다. 조흥은행 매각은 다른 단위사업장 노조와는 관계가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한국노총이 ‘임기 말까지 원수관계로 간다’고 하니 앞으로 발생할 모든 노사문제를 감정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조흥은행은 최근 사흘간 5조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파업이 길어지면 예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고객 이탈은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져 은행 가치를 떨어뜨린다. 파업을 하고 있는 직원들 스스로가 파업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한국노총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민주노총 출신들이 청와대 노동부 등에 포진해 소외감을 느껴온 데다 산하 단위사업장 노조들이 연이어 민주노총으로 소속을 바꾸고 있어 조직을 지키기 위해 강경노선으로 돌아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민주노총 소속인 두산중공업 철도노조 화물연대 등의 강경투쟁에 계속 양보하는 것을 보면서 지도부가 내부 압력을 받았다는 해석도 있다니 이번 사태의 일부 원인 제공은 정부가 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조흥은행을 강경노선의 실험대로 삼은 판단은 대단히 잘못됐다. 조흥은행 매각은 국제입찰을 거쳤고 국제신인도와 직결된 사안이어서 정부의 양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지금이라도 분할매각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협상 가능한 조건을 내걸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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