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홈런의 추억’…이승엽 3경기째 잠잠

  • 입력 2003년 6월 19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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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홈런은 언제 터질까. 안풀린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타석에서 물러나는 이승엽(왼쪽). 상대투수의 위협구에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며 여유를 보이는 이승엽(가운데). 2루에 진출한 이승엽이 상대투수가 교체되는 동안 엉거주춤한 자세로 뭔가 생각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300홈런은 언제 터질까. 안풀린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타석에서 물러나는 이승엽(왼쪽). 상대투수의 위협구에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며 여유를 보이는 이승엽(가운데). 2루에 진출한 이승엽이 상대투수가 교체되는 동안 엉거주춤한 자세로 뭔가 생각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고생 좀 하시겠네요.”

19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이승엽(27·삼성)은 빙긋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당분간 300홈런 나오기가 쉽지 않을 텐데 계속 따라다니면서 취재하기에도 고생스럽겠다는 의미.

아닌 게 아니라 폭풍처럼 몰아치던 그의 홈런포는 최근 주춤거리고 있다. 6월 들어서자마자 9개의 홈런을 날리며 개인통산 300홈런에 2개를 남겨뒀던 이승엽은 상대팀의 집중 견제로 4경기째 홈런을 터뜨리지 못했다. 그가 6월 들어 4경기 동안 홈런을 못 때린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팀은 승승장구. 삼성은 비록 19일 LG전에서 패하긴 했지만 이 경기 전까지 7연승을 거두며 선두 SK를 턱밑까지 쫓았다. 이른바 ‘이승엽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6월 10일 사직 롯데전에서 이승엽이 하루에 3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개인통산 297호를 기록한 뒤부터 상대팀의 견제가 부쩍 심해졌다. 이후 7경기에서 이승엽이 얻은 볼넷은 10개. 포수가 일어나서 공을 받는 고의볼넷은 없지만 사실상 의도적인 볼넷이 많다. 투수들은 스트라이크가 아닌 유인구를 주로 던진다. ‘속으면 좋고 아니면 거르자’는 식이다.

투수들이 스트라이크를 안 던지는데 이것저것 마구 방망이를 휘두를 수도 없다. 나쁜 볼에 손을 대면 타격 밸런스가 흐트러지기 때문.

이승엽은 아직 침착하다. 그는 “99년 이런 일을 한 차례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급할 것 없다. 내 타격 페이스만 지키면 홈런은 터지게 돼 있다”며 여유만만. 다만 “잠실구장에서 올해 홈런이 하나도 없어 이번에 뭔가 보여주려고 했는데 LG와의 3연전에서 홈런을 못 쳐 아쉽다”고 말했다.

‘아홉수’라는 게 있다. 대기록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일시적인 슬럼프에 빠지거나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아홉수에 걸렸다’고 한다.

해태 시절 김응룡 감독은 프로야구 최초의 1100승 감독이 되기까지 1099승 이후 6연패를 해야 했고 2000년 정민태(현대)는 19승에서 20승으로 가기까지 한 달 열흘이 걸렸다.

‘아홉수’는 우리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20승과 사이영상 수상을 각각 6차례 기록한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뉴욕 양키스) 같은 대투수도 올 시즌 개인통산 300승에 1승 남겨 놓고 3경기 선발등판에서 2패만 기록하며 아홉수에 시달렸다.

이승엽은 99년 시즌 최다홈런 경신에 1개를 남겨둔 상태에서 1주일간 홈런을 못 치다가 8월 2일 대구 롯데전에서 43호를 터뜨린 적이 있다.

요즘 삼성과 맞서는 팀들은 삼성이 아니라 이승엽을 상대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대기록의 제물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승엽 덕분에 다른 타자들에 대한 견제는 소홀한 편. 이승엽의 바로 뒤인 4번에 포진한 마해영은 18일 잠실 LG전에서 3타수 1안타 3타점을 기록한 뒤 “내가 감독이라도 이승엽을 거르고 나와 정면 승부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로선 대환영”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이승엽이 볼넷을 자주 얻음에 따라 주자가 루상에 모일 기회도 덩달아 많아지고 막강한 삼성 타선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올 시즌 평균득점이 5.7점인 삼성은 최근 7연승을 하는 동안 경기당 6.7점을 뽑아내 게임당 1득점이나 늘어났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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