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화 두소리]'매트릭스2…'를 보고

  • 입력 2003년 6월 4일 1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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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오해진 것인가 아니면 폼만 재다 말았나. 영화평론가 심영섭씨, 남완석 교수(전주 우석대 영화학과) 부부가 이 달에는 현재 상영중인 ‘매트릭스 2 리로디드’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남=‘매트릭스’ 1편이 워낙 강렬해 2편이 그에 미치지 못할 거라는 예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했는데 ‘역시나’야. 맛있게 먹었던 짬뽕을 떠올리며 곱빼기를 시켰는데 원래 맛이 나지 않는 느낌이야.

심=그렇다면 난 이렇게 비유를 하고 싶군요. 짬뽕 정도가 나올 줄 알았는데 요리가 나왔다고. 기대 이상이야. 블록버스터로는 드물게 깊이 있고 현란한 요리였어.

남완석

남=1편보다 낫다고?

심=어떤 영화가 1편보다 좋을 수 있을까? 1편만큼 좋았어.

남=1편에는 영화 기술의 신기원을 이룬 명장면들이 많잖아. 2편에 그에 비견할 만한 장면들이 있다고 생각한단 말야?

심=아니. 하지만 2편이 매혹적인 이유는 세계관의 확장 때문이야. 1편은 선과 악으로 양분된 세계에서 하나의 구세주가 있다는 신약성서적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데 2편은 이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넘어갔지. 2편의 악당 스미스는 “목적은 존재의 이유”라고 말하잖아. 또 다른 악당 메로빈지언은 “세상은 인과의 법칙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하지. 두 악당 모두 데카르트적인 인과론의 신봉자야. 반면 인간의 세계인 시온을 이끄는 대의원과 네오의 대화를 보자고. 이들이 ‘통제’에 대해 대화하다 네오가 “기계와 우리가 공생관계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고 물으니까 대의원이 웃으면서 “포인트는 없다”고 하잖아. 그거야말로 2편의 포인트야. 1편의 핵심 문장은 “스푼은 없다”였어. 현실 인식을 바꿔야만 다른 세계가 보인다는 인식론의 문제를 제기한 거였지. 그런데 2편은 그런 인식의 문제를 넘어서서 세상은 선악으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포인트가 없고” 모호하며, 선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 신념이 강했던 모피어스가 “한낱 꿈이었다”는 독백을 할 정도로 1편의 이분법을 버리고 더욱 더 인식 불가능한, 더 몽환적인, 그럼으로써 진실의 모습에 다가가려는 몸짓이 들어 있는 영화야.

심영섭

남=그렇지 않아. 1편에서는 액션과 철학적 질문이 서로 잘 녹아 들어갔지만 2편에선 후반부 20분에 대사를 통해 집중적으로 ‘철학’을 말하잖아. 억지스러워. ‘생각하게 하는 액션’이 없어. 고속도로 추격 장면을 봐. 할리우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 액션 장면이지. 하지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루해. 왜? 1편에서 네오는 불사신도, 슈퍼맨도 아니었잖아. 네오가 과연 저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관객들이 장면을 주의 깊게 따라가고 심정적으로 이끌리지. 그런데 2편에서는 네오가 불사신이 되어버려서 감정이입이 안돼. 그냥 구경거리일 뿐이야.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여백은 전혀 없고 특수효과와 액션이 넘치는 과잉의 영화야. 한 마디로 깊이 있는 척 하는 깊이 없는 영화야.

심=그건 보는 사람이 깊이가 없어서 그렇지. 네오가 슈퍼맨처럼 되는 건 그가 결함이 없는 기계처럼 되었다는 걸 상징하는 거야. 반대로 1편에서 기계의 일부였던 스미스는 ‘나’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인간처럼 되잖아. 2편은 기계와 인간의 경계마저 뛰어넘으려고 하고 있어. 기계와 인간이 융합상태가 되는 세상을 보여주는 거지. 과잉의 영화라고 했는데 액션의 과잉이 늘 매트릭스 안에서만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해봐. 매트릭스 안에서만 네오도 슈퍼맨처럼 날아다니고 현란한 추격, 액션장면이 벌어지잖아. 그것이야말로 디지털 세계, 매트릭스의 공허함을 보여주는 장치야. 시온의 축제 장면을 봐. 혼음난교적인 느낌을 줌으로써 디지털이 잡을 수 없는 부분을 보여주잖아.

남=시온의 축제 장면은 생뚱맞아. 그 장면과 네오와 트리니티의 베드신을 교차 편집하는데 그건 팬 서비스일 뿐이야. 네오와 트리니티의 격정적 사랑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디오니소스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에 불과해. 당신처럼 아무데서나 ‘깊이’를 찾으려 들면 포르노에선들 깊이를 못찾겠어?

심=포르노에서 찾아낼 수 있는 건 사회적 함의성이지. ‘매트릭스’는 영화 그 자체가 풍부한 함의를 갖고 있어. 1편에서는 선글라스, 거울을 통해 반사의 이미지가 되풀이 돼. “네가 누구인지 알려고 노력하라”는 모피어스의 말처럼 반영과 인식이 화두였다고. 그런데 2편의 주요 이미지는 겹겹이 쌓인 문이야. 이제 ‘인식’이 아니라 문을 여는 ‘행동’이 화두가 된 거야. 문 저편의 세계는 들어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고, 완전히 다른 세계가 나를 기다리더라도 계속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 결국 근원에 대면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매트릭스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또 굉장히 디지털적인 영화이면서도 이 문을 열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적인 열쇠가 필요하잖아. 디지털의 해답도 결국 아날로그적인 것에 있음을 암시하는 거지.

남=그건 전형적인 과잉 해석이야. 워쇼스키 형제 감독이 ‘매트릭스’를 통해 ‘한 예술’하려고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건 상업영화야. ‘매트릭스’의 영화사적 의미는 인간이 정상적 눈을 갖고서는 지각할 수 없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액션의 신천지를 스크린에 구현했던 영화기술적인 혁신에 있는 것이지 철학에 있지 않다고. ‘매트릭스’의 철학적 주제가 퓨전적이고 심오하다는 느낌을 줄 수는 있는데 그건 ‘깊이’의 문제가 아니라 ‘넓이’때문이야. 워낙 잡다한 것을 섞어놔서 의미 그 자체가 불분명하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으니까.

심=그게 바로 장점이라니까, 글쎄.

남=시리즈 영화를 만드는 게 유행이잖아. ‘반지의 제왕’ 2편은 1편의 줄거리를 잘 따라가면서도 액션과 인물의 성격 구현이 잘 어우러지는 성공을 거뒀는데 ‘매트릭스’ 2편은 실패했다고 생각해. 꼭 사이버 세계의 해리 포터를 보는 듯한 느낌이야.

심=아냐. ‘매트릭스’에는 예언자적인 면이 있어. 1999년에 1편은 디지털의 공허함, 기술관료들이 권력을 잡으리라는 것, 그리고 트리니티를 통해 여성 안의 남성성이 부각될 미래를 예언했어. 그런 예언은 다 들어맞았잖아. 2편에는 새로운 예언과 질문들이 있어. 인간적인 기계의 출현, 그럼으로써 앞으로 인간은 기계와 불가분의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고. ‘매트릭스’는 진화하고 있어.

남=그런 철학적 함의가 있다 하더라도 2편에서는 영화적 그릇이 그 함의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어. 액션이 너무 강조되고 부각되는 바람에 관객과의 의사소통이 흐트러졌다고. 액션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관객들에게 ‘이 액션 밑에 뭔가 있단다’하는 식의 깊이감을 억지로 불어넣기 위해 철학적 질문을 배치한 듯한 느낌이야. 서로 겉돌아. ‘매트릭스’도 이제 속편이 결코 전편을 뛰어넘을 수 없는 속편 신드롬에 빠져버렸어.

정리=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토론 관전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부부의 논전은 마지막에 ‘매트릭스’ 3편은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에 대한 추측으로 이어졌다.

심=3편은 어떨까? 내 생각엔, 아마 네오 앞에 스미스나 근원적인 소스 프로그램이 나타나서 “내가 네 아버지다” 그렇게 말할 것 같아. ‘스타워즈’처럼 말야. 하하∼.

남=1편에서는 현실이 허상이고, 2편에서는 네오가 구세주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식의 반전이 이뤄졌잖아. 3편에도 그만한 반전이 있겠지. 아마 사람들이 ‘현실’이라고 믿고 있던 시온조차 매트릭스다, 그런 반전이 나오지 않을까? 2편의 끝 자막은 ‘투 비 컨클루디드 (To Be Concluded)’였는데 3편은 ‘웰컴 투 넥스트 레벨(Welcome to Next Level)’하고 끝날 것 같아. 그런데 말야. 네오는 100명으로 복제된 스미스랑 싸울 때 날아가면 되는데 왜 계속 싸우다가 막판에서야 날아가지?

심=그거야 뭐, 처음에는 이까짓 것쯤이야 안 날아가도 되겠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떼거리로 몰려드니까 아차 싶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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