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가끔식 비…」/소외받은 자들의「행복만들기」

  • 입력 1998년 4월 28일 06시 46분


가끔씩 비 오는 날이면 저도 쓸모가 있었지요. 콘크리트벽에 붙어 있는 작고 볼품없는 못이라 그림이나 시계도 걸지 못하죠. 어느 비 오는 날, 주인 아저씨께서 저의 목에 끈을 매달아 예쁜 화분을 창문 밖에 걸어 놓으셨어요. 정말 행복했지요.

이가을씨의 동화집 ‘가끔씩 비 오는 날’. 창작동화 12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세상에서 소외받는 대상들이다. ‘엄마 손은 약손’이란 노래처럼 작가는 이렇게 아픈 데를 찾아다니며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 준다.

짝발을 갖고 태어난 장애인 소녀, 아파트 베란다에 날아온 비둘기, 아궁이에서 떨어져 불에 덴 강아지, 폐렴을 앓는 친구….

정신지체자인 창복이는 체육시간에 친구들이 체조를 할 동안 “야, 야”소리를 지르며 운동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닙니다. 선생님은 흙을 퍼담기 좋아하던 창복이에게 학교 한 구석에 ‘창복이의 밭’을 일구게 했습니다. 창복이는 학년도 올라가지 않고 열여섯살에 병을 앓아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흙 속에서 살았습니다.

현실의 고단함을 피하지 않는 이 책에서는 아동문학이 꺼리는 죽음까지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최근 세상을 떠난 동시 ‘구슬비’(송알송알 싸릿잎에 은구슬…)의 작가 권오순씨, 탄광촌과 장애인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폐렴으로 숨진 임길택선생의 삶과 죽음을 그린 동화도 감동을 전해준다.

기죽어 있는 아이들에게 ‘작은 못’이 들려주는 이야기. “가끔씩 비 오는 날 쓸모가 있는 못이 되는 나는 아주 행복합니다. 언제나 쓸모 있는 못이라면 느끼지 못할 행복입니다.” 창작과비평사. 6,000원.

〈전승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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