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공식초청 「강원도의 힘」홍상수 감독

  • 입력 1998년 4월 27일 07시 05분


‘강원도의 힘’을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만든 홍상수감독(37)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질 것이다. 단 두편의 영화로 ‘작가’라는 칭호로 불릴 만큼 자기 색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일상이라는 삶의 표면을 훑어나가면서도 사람의 본질을 예리하게 잡아내는 영화. 결코 인간 존엄성이나 삶의 숭고함 같은 ‘영화적 진실’을 믿지 않을 것 같은 눈길. 그래서 최근 칸영화제는 ‘강원도의 힘’을 공식섹션인 ‘주목할만한 시선’부문에 초청하면서 “90년대말 현재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정교하게 포착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시큰둥하고 냉소적으로 만들었으면서도 뜻밖에 홍상수는 “나는 쾌락주의자”라고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장 힘을 덜 들여서 가장 많은 행복을 얻겠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다만 남에게 해를 끼치느냐, 아니냐가 다를 뿐. 그런데 입으로는 그렇게 말을 안한다. 나는 솔직히 말한다는 것이 다르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교와 사회가 가르치는대로 열심히 맞춰가려고 애썼으나 별 효과를 못봤다는 얘기를 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가 그랬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왜 잘안됐을까, 고심하다가 내가 배워온 교과서나 진리가 잘못됐을수도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그래서 아무런 ‘상투성’없이 자신의 눈으로 삶을 보면서 살면 좋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자기대로사는 방식을 방해하는 것에 대한 내나름의 ‘시비 걸기’다.”

이처럼 살면서 깨달은 철학은 그의 영화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삶과 분리된 영화는 없다. 다만 영화로 오는 길이 좀 오래걸렸을 뿐.‘할리우드 키드’의 기억을 갖고 있는 대다수의 영화인과 달리 그는 아이적에 영화를 많이 보지도 않았고 커서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머니(영상프로그램제작사 ‘시네텔’ 전옥숙회장)와 친분이 있는 연극연출가 오태석이 “연극을 해보라”고 해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로부터 14년이 지나서였고 드디어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했다. 상업적으로는 실패한 이 영화는 이듬해 로테르담영화제와 밴쿠버영화제에서 각각 작품상과 용호상을 받았다.

“잘풀린 인생은 아니었지만 참을성은 있어서 길게 우회하여 영화로 왔다. 영화는 내가 정말 호기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하나의 생물이다.”

홍상수가 만든 영화에는 그가 언젠가 보았던 것, 들었던 얘기가 그대로 들어 있다. 늘 들고 다니며 깨알처럼 적어온 수첩이 라면상자로 셋이다.

‘강원도의 힘’도 몇년전 여자후배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강원도로 여행갔다가 왔다”는 말을 듣고 써놓았던 것이 살이 붙어 나왔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남녀주인공이 따로 움직이는 이중구조는 도자기 두개가 포개져있는 오래된 신문사진을 오려둔 것이 모티브가 됐다.“내가 보고 믿는 것만 말한다”는 것이 그의 영화 발언법이다.

‘흥행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관객이 안들면 ‘더 작은 영화’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홍상수를 주목하는 비평가들은 “홍상수는 힘이 세다”고 했다.

〈김순덕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