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정/쿼바디스 코리아

  • 입력 1998년 4월 20일 19시 52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기적은 요소 투입의 결과이며 이같은 요소 투입이 한계에 부닥쳤을 때 성장은 정지될 수밖에 없다.”

미국 MIT대 폴 크루그먼교수의 평가다.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매킨지의 한국 재창조 보고서도 크루그먼의 평가와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던 지난 30여년간 한국의 압축성장을 투입주도의 결과로 사정없이 깎아내렸다.

자본 노동 등 요소 투입을 아무리 늘려도 생산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포화상태, 즉 포물선의 정점에 도달하면 성장은 막을 내린다는 분석이다. 생산성의 향상 없이 덩치 키우기만으로는 더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으며 그때부터 경제적 위기는 빠르게 진행된다는 뼈아픈 지적이기도 하다.

지난 30여년동안 한국은 민간부문에서 끌어모은 자본과 외국에서 빌려온 돈을 대대적으로 제조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자본에 대한 평균 수익률은 차입금에 대한 금융비용을 충당하기에도 힘들었다. 그것을 매킨지는 한국기업의 가치파괴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성장은 끝없는 가치파괴 과정이었다고 혹평한다.

한국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 놓인 원인(遠因)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의 경제위기는 한마디로 국가경쟁력의 약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정경유착, 자원배분의 왜곡, 노동시장의 유연성 결여 등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 한국은 IMF금융지원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국가부도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거시경제 여건과 중장기적인 성장기반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하루 1백여개의 기업이 쓰러지고 수천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산업설비는 고철값에 외국으로 팔려나간다. 그리고 우리 경제는 아직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視界)제로’ 상태다.

한국은 지금 고통스런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IMF가 요구하는 금융과 기업 등의 개혁이 그것이다. 이는 투입 주도의 성장모델에서 탈피해 생산성이 주도하는 성장궤도로의 진입을 지향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같은 방식에는 위험부담이 있다. 바로 실업문제다. 구조조정과 실업대책을 놓고 정부 정책이 중심을 못잡고 있는 것도 이같은 딜레마에서 연유한다.

IMF의 정책권고는 경제회생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불안을 부를 수 있다. IMF관리체제 극복만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제삼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IMF체제 이후의 미래전략도 함께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의 제조업은 미국과 일본 유럽국가 등의 선진산업기술과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 및 동남아 국가들의 추월이라는 ‘너트 크래커(호두까는 기계)’에 끼여 있다.

한국의 활로는 제조업의 생산성 제고를 가로막고 있는 서비스산업에 대한 추가적인 개혁과 문화지식산업의 국가전략산업화에서 찾아야 한다. 국책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문화지식산업 육성에 15조원을 투입할 경우 1년 안에 32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 실업문제와 구조조정이라는 두가지 현안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앨빈 토플러도 현재의 위기에 너무 얽매여서는 더 큰 위기를 맞게 된다고 경고한다. 정보화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바로 자본인 사회다. 한국의 미래 역시 무한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정보 문화 지식산업과 기술 소프트웨어의 비교우위 선점 여부에 달렸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를 꿰뚫는 혜안이다.

김용정(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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