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 거쳐간 5인의 총리들]1黃4李

  • 입력 1997년 3월 4일 19시 39분


[윤정국기자] 「주부총리」 「대쪽총리」 「화합총리」 「세계화총리」 「서민총리」 등. 지금까지 金泳三(김영삼)정부하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다섯명은 이같이 국정운영 스타일상 각각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김대통령은 문민정부 초대총리로 군 관 정 재계를 두루 거친 당시 민자당의원 黃寅性(황인성)씨를 발탁했다. 황총리는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주부」에 비유, 「주부총리론」을 주장하며 국정을 꼼꼼히 챙겼다. 황총리는 그러나 재임기간중 △구포열차사고(93년3월) △슬롯머신사건(93년4월) △서해 페리호침몰사고(93년10월) 등 대형사건사고가 잇따라 터져 「고개숙인 총리」가 되고 말았다. 황총리는 결국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쌀개방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李會昌(이회창)총리는 감사원장 시절의 트레이드마크인 「개혁」과 「대쪽」의 이미지를 자리를 옮긴 뒤에도 계속 유지했다. 이총리의 국정운영 원칙은 「모든 것을 법에 따라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총리는 중요현안이 있으면 청와대 비서실이나 관계장관 등 중간단계는 생략해버리고 직접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른바 「진검(眞劍)」스타일. 이총리는 결국 94년4월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의 내용이 총리를 거치지않고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것을 문제삼아 김대통령과 충돌끝에 경질됐다. 이어 취임한 李榮德(이영덕)총리는 이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듯 취임직후 「화합총리」를 자임했다. 李洪九(이홍구)총리의 취임일성은 「세계화」였다. 이총리는 정부조직개편 정보화 등 세계화정책들을 추진했으며 국정을 무리없이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총리는 그러나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 두 전 대통령의 구속이후 국면전환 차원에서 교체됐다. 이어 등장한 李壽成(이수성)총리는 「서민총리」를 자임하며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러 현장을 다녔고 소탈한 성품과 친화력으로 내각을 장악, 소리없이 조정력을 발휘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총리는 중요현안이 있으면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관계장관들을 불러들여 설명을 듣고 절충을 시도하는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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