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권 지키는 원년으로

동아일보 입력 1997-01-05 20:05수정 2009-09-2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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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丁丑年) 새해, 사법(司法)분야에 조용한 혁명이 일고 있다. 다름 아닌 구속영장실질심사제를 통한 인권보호의 흐름이다. 과거의 구속관행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어서 국민은 물론 법을 집행하는 검찰 경찰 등도 상당한 인식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영장실질심사제의 시행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큰 물결이다. 새해 들어 전국법원에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구속영장을 기각한 비율이 28%로 평상시 7∼10%보다 크게 높았다. 더욱이 새 제도 도입에 따라 검경이 과거보다 나름대로 엄선하여 영장을 청구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기각률은 예사 수치가 아니다. 구속될 것으로 예상했다가 영장이 기각되자 어리둥절해하는 피의자들의 모습을 어느 법원에서나 볼 수 있다. 법원의 판단기준을 아직도 정확히 몰라 곤혹스러워 하는 검경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새해 5일간의 시행결과를 놓고 새 제도에 관해 종합적 평가를 내리기는 아직 이르나 인권보호 및 신장(伸張)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사법선진화의 계기로 삼으려는 사법부의 의지 또한 굳고 진지한 것으로 보여 기대가 크다. 영장기각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불구속 피고인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보다 가깝게 다가서는 것이며 검찰과 피고인은 대등한 공격 방어권을 가진 형사소송의 상대방이라는 당사자주의에도 충실한 것이다. 검사는 권력을 가진 법률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호통치는 입장이고, 피고인은 법률지식도 없고 수갑을 찬 채 일방적으로 추궁만 당하는 입장이라면 법정에서 피고인의 진술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불구속 재판은 피고인의 자기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한 것이다. 실질심사를 받고도 구속된 한 피의자의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판사 앞에서 할 말을 다하고나니 속은 시원하다. 구속에 이의가 없다』 새 제도는 법정에서의 실체적 진실 발견과 수사기관의 인권보호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바도 크지만 마음으로부터 피의자의 승복을 이끌어내는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사법제도가 범죄자에게 반성을 하게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범죄자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이야말로 형사정책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구속 남발을 막고 인권을 지키는데 힘을 쓰는 일은 남북대치 상황에서 남한사회의 우월성을 더욱 높이는 것이다. 자유와 인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민주사회의 기본가치다. 사법부는 영장실질심사제를 잘 가꾸어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고 인권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드는데 큰 주춧돌을 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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