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호 파문]李­權씨「CDS 백지화」로 『불화』

  • 입력 1996년 10월 20일 20시 22분


李養鎬전국방장관과 무기중개상 權병호씨의 첫만남은 지난 92년7월경이었다. 당시 국방부정보본부장(중장)이었던 李전장관은 잘 알고 지내는 후배장성의 소개 로 골프장에서 權씨를 만났던 것. 이 자리에서 『盧泰愚대통령 딸 素英씨를 잘 아는데 대장으로 진급해 참모총장에 임명되도록 힘써보겠다』는 權씨의 제의를 받고 자신이 진급해야하는 이유를 메모로 적어주었으며, 그이후 사업자금으로 4천만원만 빌려달라고 하자 담보를 받고 이 돈 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대해 李전장관은 『골프장에서 처음 만난지 며칠 지나서 權씨가 찾아와 「진 급운동비용으로 1억5천만원이 필요하다」고 말해 터무니없는 소리 말라며 돌려보냈 는데 며칠 뒤 다시 찾아와 「개인사업이 어려워 4천만원을 빌려달라」고 사정해 권 씨의 회사(UGI)주식을 담보로 받고 빌려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李전장관은 『당시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이었지만 그 돈을 진급로비에 사용 하라고 준 것은 아니다』고 적극 해명하고 있으나 權씨측은 『素英씨에게 건네준 3 천5백만원짜리 다이아몬드반지와 목걸이를 사는데 썼다』고 주장, 양쪽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李전장관이 94년8월 權씨에게 항공기정비용컴퓨터(CDS)납품과 관련, 영문메모를 건네줬다는 사실도 두사람의 「밀월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두사람의 관계는 94년까지만 해도 아주 좋았다는 게 국민회 의측의 판단이다. 그러나 둘사이가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이후 CDS납품사업이 백지화되는 등 일이 틀어진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최근 千容宅의원(국민회의)을 찾아온 李전장관이 『5년동안 사기꾼에 끌려다녔다 』고 말한 점이나 權씨가 주변에 『李전장관이 둘 사이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흥분한 점이 이런 정황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결국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權씨와 李전장관과의 불화(不和)는 깊어져 급 기야 權씨가 폭로라는 마지막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국민회의측 의 설명이다. 〈鄭然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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