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 새지평]밥맛나는 사회

  • 입력 1996년 10월 17일 10시 39분


이곳 용인(龍仁)에선 가을이 더 가깝다. 창 너머 감나무 너른 잎이 하루가 다르게 붉어진다. 바람이 불면 선홍빛 감잎부터 먼저 뛰어내린다. 천명(天命)을 다하고 때 가 와서 뛰어내리니 제 본체와의 연(緣)을 단호히 끊었으되 그 낙하가 참으로 깃털 보다 가뿐하고 이쁘다. 가을이 깊을대로 깊어도 억지를 쓰고 본체에 매달려 있는 도 심의 추한 플라타너스잎과는 다르다. ▼ 힌두교의 고행과 행복 ▼ 몇년 전 남아공화국의 인도인지역에서 힌두교인들의 큰 축제를 본적이 있다. 초월 적 삶으로 가고싶은 것은 힌두인들의 제일 소중한 꿈이다. 초월적 삶에 이르는 가장 보편적 방법은 고행이다. 혀를 내밀고 그 가운데 대바늘을 수직으로 꽂아 하루종일 혀가 입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해놓고 뙤약볕 아래에서 춤추는 사람도 그 축제에 서 나는 여러 명 보았다. 고통스럽지 않냐고, 나는 어떤 힌두인에게 우문(愚問)을 했다. 『깃털처럼 몸이 가벼워지지요』 한 힌두인 수행자의 대답을 잊을 수 없다. 힌두인들은 만물을 만들어내고 지배하 는 초월적 최고원리를 「브라흐만」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브라흐만」의 본체를 파악하여 마침내 고통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내는 주체, 나는 「아트만」이다. 극 단적인 고행을 통해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합일을 얻으면 몸은 깃털처럼 가 벼워진다는 것이다. 고행이란 말하자면 「무거운 수행법」을 통해 욕망과 업(業)의 사슬을 끊어내고 난 「가벼운 육신」을 얻자는 하나의 방법론이다. 참된 행복이 거 기에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행복이란 말은 이제 진부한 사어(死語)가 된 세상이다. 무장간첩 소탕작전에 대한 긴박한 뉴스를 연일 접하면서 긴박해지기보다 차라리 슬프고 아프다. 밥맛도 나지 않고 먹어도 속이 빈 듯한, 이것은 무엇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명 실상부 선진국대열에 들어서게 됐다는 말도 괜히 허장성세의 뜬소문같고, 국감(國監 )으로 밤낮이 없다는 선량들도 괜히 다리 아래에서 원님 꾸짖는 것 같다.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은가. 가뿐히 낙하하는 감잎을 보며 터무니 없이 이런 질문과 만난다. 욕망은 우리 세상 의 발전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재생산 유포된다. 상투적이고 획일적인 욕망의 광 포한 재생산을 균형있게 조율해줄 어떤 그룹도 어떤 목소리도 듣지 못한다. 그런 소 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그룹이 오히려 획일적 욕망의 확대재생산 진원지가 된다. ▼ 「포만감」이 없는 가을 ▼ 세계는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들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애당초 세상의 본디 모습 이 그러하거니와, 우리가 만드는, 또 만들어가는 앞날의 사람살이, 우리 세상이 그 조화를 계속 품고 있게 될는지는 의문이다. 내가 스무살이었을 때, 비록 가난했지만 요즘처럼 먹어도 속이 텅 빈 것 같지는 않았다. 행복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망정 최소한 행복이란 말을 군고구마처럼 따 뜻이 품안에 품고 살았다. 그 시절은 사람들 각자가, 또 세상이 「브라흐만」과 「 아트만」의 합일을,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영혼과 물질의 조화를, 전체와 개인의 균형을, 쟁취와 베풂의 올바른 가름을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밥맛나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다. 박 범 신 <작가·명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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