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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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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91〉산길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91〉산길

    산길 ― 문현미(1957∼ ) 청빛 바람 그득한 흙길을 걸으면생각의 잎사귀들이 파파파 넓어진다 그림자가 가벼워지는 시간영혼에 풀물이 스미는 시간 내 속의 어지러운 나, 우수수 흩어지고파릇한 정맥에 새 길이 나는 걸 예감할 때 호젓이 야생으로 점화되어온몸에 속잎이 자라고 꽃이 피어 마침…

    • 201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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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90〉세상의 모든 울음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90〉세상의 모든 울음은

    4월은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달이다. 무척 아름답다고, 배워서 알았고 경험적으로 알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점에서 4월은 더 이상 경이롭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 계절을 만끽하길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봄 풍경은 시선이 닿는 곳마다 꽃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진달래와…

    • 20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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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9〉내 세상은 물이런가 구름이런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9〉내 세상은 물이런가 구름이런가

    내 세상은 물이런가 구름이런가 ― 김억(1896∼?) 혼자서 능라도의 물가 둔덕에 누웠노라면흰 물결은 물소리와 함께 굽이굽이 흘러내리며, 저 멀리 맑은 하늘의 끝없는 저곳에는 흰 구름이 고요도 하게 무리무리 떠돌아라. 물결과 같이 자취도 없이 스러지는 맘, 구름과 같이 한가도 하게 …

    • 201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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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8〉분이네 살구나무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8〉분이네 살구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 정완영(1919∼2016) 동네서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이 아름답고 짧은 시조를 지은 이는 백수(白水) 정완영 시인이다.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로 끝나는 시조…

    • 201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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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7〉등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7〉등대

    우리는 어둠이 두렵다. 정확히는 어둠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어둠 속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알지 못하므로 상상한다. 어느 심연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있을까. 상상력이 극대화하면 어둠은 무서운 괴물이 되어버린다. 괴물을 가능하게 하는 …

    • 201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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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6〉빗소리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6〉빗소리

    빗소리 ― 주요한(1900∼1979) 비가 옵니다.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두운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 201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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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5〉외롭지 않기 위하여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5〉외롭지 않기 위하여

    외롭지 않기 위하여 ― 최승자(1952∼) 외롭지 않기 위하여밥을 많이 먹습니다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십니다 꿈꾸지 않기 위하여 수면제를 삼킵니다. 마지막으로 내 두뇌의 스위치를 끕니다 그러면 온밤내 시계 소리만이 빈 방을 걸어다니죠 그러나 잘 들어 보세요 무심한 부재를 슬…

    • 201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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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4〉우리나라 꽃들에겐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4〉우리나라 꽃들에겐

    우리나라 꽃들에겐― 김명수(1945년∼ ) 우리나라 꽃들에겐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모든 시에는 주인이 있다. 주인은 시대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 201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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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3〉대결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3〉대결

    대결 ― 이상국(1946∼ ) 큰눈 온 날 아침부러져 나간 소나무들 보면 눈부시다 그들은 밤새 뭔가와 맞서다가 무참하게 꺾였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공손하게 몸을 내맡겼던 게 아닐까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눈의 무게를 받으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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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2〉어머니의 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2〉어머니의 귀

    어머니의 귀 ― 김상현(1947∼) 하루 종일 누워만 계신 어머니가오늘은 이런 말을 하신다 “꼭 네가 내 손등을 톡톡치는 것 같아 눈을 떠 보면 네가 없어야” 하신다 쓸쓸함이 눈시울에 가득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일 것이다 불러보는 것만으로 모든 시름과…

    • 201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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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1〉빵집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1〉빵집

    빵집 ― 이면우(1951∼ ) 빵집은 쉽게 빵과 집으로 나뉠 수 있다큰길가 유리창에 두 뼘 도화지 붙고 거기 초록 크레파스로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님 우리 집 빵 사 가세요 아빠 엄마 웃게요, 라고 쓰여진 걸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선 버스 속에서 읽었다 그래서 그 빵집에 달콤하고 부드러…

    • 2019-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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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0〉사람이 사람에게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80〉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 홍신선(1944∼ ) 2월의 덕소 근처에서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얼음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 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잠기어 가라앉는 걸 입 닥치고 강 가운데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누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

    • 20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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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79〉별의 아픔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79〉별의 아픔

    별의 아픔 ― 남궁벽(1894∼1921) 임이시여,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어린 아이가 뒹굴을 때에 감응적으로 깜짝 놀라신 일이 없으십니까. 임이시여,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세상 사람들이 지상의 꽃을 비틀어 꺾을 때에 천상의 별이 아파한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이 시는 우리가…

    • 201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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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78〉달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78〉달

    달 ― 문인수(1945∼ )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 그리고 아무런 내용도 적혀있지 않지만 고금의 베스트셀러 아닐까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만면 환하게 젖어 통하는 달,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데 괴로워하라, 비수 댄 듯 암흑의 밑이 투…

    • 20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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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77〉나막신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177〉나막신

    나막신 ― 이병철(1921∼1995) 은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목숨 수(壽)자 박힌 정한 그릇으로 체할라 버들잎 띄워 물 좀 먹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삽살개 앞세우곤 좀 쓸쓸하다만 고운 밤에 딸그락 딸그락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우리 …

    • 201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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