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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박상준]방탄소년단의 티셔츠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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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박상준]방탄소년단의 티셔츠만 볼 것인가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입력 2018-12-08 03:00수정 2018-12-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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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자에 대한 조롱 행위”
일 언론, 자기들 상처만 부각시켜… 한국의 식민 피해에도 눈 돌려야
원폭·식민 피해자 모두 가여운 희생자, 인류 보편의 시각으로 문제 살펴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최근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가 원폭 사진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은 것이 일본 우익의 공격을 받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다. 일본의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 소동을 둘러싼 출연자들의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차라리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방탄소년단의 그 청년은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서거나 혹은 별 생각 없이 그 티셔츠를 걸쳤을 것이다. 원폭 피해자를 조롱할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나는 반일감정이 아무리 심한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원폭 피해자를 조롱하는 것은 결코 듣거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그 티셔츠가 단지 광복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은 채, 원폭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라는 점만을 부각한다. 일본인들이 원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처와 분노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에, 그들이 격앙된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출연자 중에 누구라도 한 명쯤은, “우리의 깊은 상처가 조롱받았다고 느꼈을 때의 이 분노를 한국인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과거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부정하고 미화하는 발언을 들었을 때 한국인들의 기분도 이렇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해주길 바랐다.

내가 보지 못한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그런 자성의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가 본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을 향한 분노밖에 없었기에 매우 실망스러웠다. 더욱이 이번에 문제가 된 이는 겨우 20대의 어린 청년이다. 단지 티셔츠를 입었을 뿐이고 그 티셔츠의 전체 내용은 조국의 광복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독한 이들은 일본의 유력 정치인들이다. 어느 쪽이 더 분노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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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아베 신조 총리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위안부 발언이 국제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던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의 한 아침 방송 토크쇼의 주제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는데, “세계의 오해 어떻게 풀 것인가?”였다. 세계의 오해를 풀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역사인식이 세계의 보편지성과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를 먼저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일본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나를 ‘센세이’라고 부른다. 나를 ‘센세이’로 부르는 일본인 학생들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그들과 연이 있기 때문에 한 교실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났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과거 역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부모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다만, 역사의 진실을 마주 보는 용기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지만 그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가르치는가는 지금 세대가 담당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내 학생들에게 때로는 일본인 혹은 한국인이란 시각을 벗어나 단지 한 사람 한 인간의 가슴으로 세상을 조명해 보라고 조언한다.

같은 조언이 나 자신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최근 절감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생존자 수십만 명이 피폭되었다. 일본에 산 지 20년이 되었지만 한 번도 히로시마나 나가사키를 방문한 적이 없고, 원폭에 대해 그리고 원폭 사망자나 피폭자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이번 소동을 계기로 처음으로 대부분 민간인이었던 그들 역시 전쟁의 가여운 희생자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슴이 아팠다. 일본인을 위해 딱 두 번 울었는데, 북한에 납치되었던 요코타 메구미라는 소녀의 아버지가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을 때와 3·11대지진 이후 일본인 친구들이 소리 죽여 울 때였다. 그때, 한국인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동료의 슬픔에 공감했다.

우리는 침략과 식민 지배의 희생자였기 때문에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건 희생자나 원폭 피해자의 고통에 둔감할 수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서 우리 편에 서주는 세계인들은 납치 문제와 원폭 문제에서도 희생자의 편에 서 준다. 이번 소동을 계기로 방탄소년단은 지금보다도 더 늠름하게 성장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이번 소동이 세계인의 시각에서 우리의 문제를 조명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방탄소년단#원폭 피해자#일본#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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