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못하는 이덕희, 들어보지 못했던 새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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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세일럼 오픈 대타 나와 32강… 청각장애 선수 첫 ATP 본선 승리
투어 5차례나 예선탈락 끝에 감격… 16세때 국내 최연소 퓨처스 챔피언
조코비치-나달도 ‘한 수 지도’ 격려

2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윈스턴세일럼오픈 단식 1회전에서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대회 생애 첫 승을 거둔 이덕희가 경기 후 점수가 표시된 전광판 앞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각장애 선수가 ATP투어 본선 단식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이덕희가 처음이다. 이덕희는 “믿어지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라며 기뻐했다. S&B 컴퍼니 제공
2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윈스턴세일럼오픈 단식 1회전에서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대회 생애 첫 승을 거둔 이덕희가 경기 후 점수가 표시된 전광판 앞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각장애 선수가 ATP투어 본선 단식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이덕희가 처음이다. 이덕희는 “믿어지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라며 기뻐했다. S&B 컴퍼니 제공
청각장애를 딛고 이덕희(21·서울시청)가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단식 본선에서 생애 첫 승을 거뒀다. 청각장애 선수가 ATP투어 단식 본선에서 이긴 것은 이덕희가 처음이다.

세계 랭킹 212위인 이덕희는 2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윈스턴세일럼 오픈 단식 1회전에서 세계 120위 헨리 라크소넨(스위스)을 서브 에이스 9개를 앞세워 2-0(7-6<7-4>, 6-1)으로 눌렀다. 이덕희는 이 대회 전까지 ATP투어에 5차례 도전해 모두 예선에서 탈락한 끝에 값진 결과를 얻었다. 지난해 약혼한 전수빈 씨와 동행한 이번 대회에는 대기 선수로 있다 결원이 생겨 본선에 직행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덕희는 “첫 승이 믿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장애를 놀림거리로 삼아 왔다. 그들은 내가 테니스를 할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애가 있다고 들은 사람들을 향해 보내고 싶은 메시지는 ‘의기소침해지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이 열심히 도전한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ATP투어는 이덕희의 승리 소식을 홈페이지 메인 화면 첫 소식으로 게재하기도 했다. 영국 BBC도 이덕희의 첫 승을 비중 있게 다뤘다.

32강에 오른 이덕희는 3번 시드 후베르트 후르카치(41위·폴란드)와 2회전을 치른다.

2015년 윔블던 주니어 단식 출전 당시 노바크 조코비치(오른쪽)와 함께 훈련한 뒤 기념 촬영을 한 이덕희. 동아일보DB
2015년 윔블던 주니어 단식 출전 당시 노바크 조코비치(오른쪽)와 함께 훈련한 뒤 기념 촬영을 한 이덕희. 동아일보DB
선천성 청각장애의 어려움에도 어릴 때부터 테니스 신동으로 주목받은 이덕희는 마포고를 거쳐 서울시청에 입단했다. 19세 때인 2017년 세계 랭킹 130위까지 올랐다. 16세 1개월의 나이로 국제테니스연맹(ITF)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하며 국내 최연소 챔피언 기록을 세웠다. 그의 도전이 널리 알려지면서 왼손 천재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가 이덕희를 훈련 파트너로 초청해 격려하기도 했다. 영국의 앤디 머리는 “청각장애는 테니스에 큰 핸디캡이 된다. 들을 수 없으면 공의 스피드를 소리로 파악할 수 없어 불리하다”며 이덕희의 투혼에 성원을 보낸 적이 있다.

이덕희는 수화를 쓰면 비장애인들과 어울리는 데 제약이 될까 봐 배우지 않았다. 그 대신 상대 입 모양을 보고 의사소통을 하는 구화를 쓴다. 자칫 말을 적게 하면 운동선수에게 중요한 폐활량이 줄어들까 봐 일부러 큰 소리로 떠들 때가 많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이덕희#청각장애 선수#남자프로테니스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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