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길은 사고길’ 경고에도 콧방귀… 단속나서면 “몰랐다” 줄행랑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북한산 샛길산행 단속현장 가보니

6일 오전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사무소 직원들이 정해진 탐방로가 아닌 샛길로 다니던 등산객들을 단속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6일 오전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사무소 직원들이 정해진 탐방로가 아닌 샛길로 다니던 등산객들을 단속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난 몰랐어. 얼른 먹고 갈게요.”

일요일인 6일 낮 12시 30분경. 북한산 보문능선에 있는 비법정탐방로(샛길). 여기서 둘러앉아 김밥과 막걸리 등을 나눠 먹던 50대 남녀 일행 5명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이들이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은 샛길은 등산객의 안전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다. 이날 등산객들의 샛길 출입 단속에 나선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사무소 직원들이 “더 드시지 말고 그만 자리를 정리해 달라”고 하자 이들은 빈 막걸리통을 주섬주섬 치우면서 “출입금지구역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샛길 바로 옆에는 등산객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로프가 둘러쳐졌고 ‘탐방로 아님’이라고 적힌 안내 팻말도 세워져 있었다.

국립공원이 등산객들의 불법행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정규 탐방로가 아닌 샛길로 다니는 등산객이 많다. 본보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3시간가량 국립공원도봉사무소 직원들의 샛길 출입 단속 현장에 동행했다. 서울시와 경기도에 걸쳐 있는 북한산국립공원은 지난해 국립공원공단이 관리하는 전국 21개 공원 중 샛길 출입을 비롯한 불법행위(363건)가 가장 많았던 곳이다.

6일 오전 북한산 우이암 정상 근처에서도 샛길로 산행하던 A 씨(60) 부부가 단속에 적발됐다. A 씨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가기에 따라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60대 부부는 우이암 정상 부근에서 휴대용 스피커로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샛길에 앉아 있었다. 단속 직원이 부부에게 다가가 이어폰을 사용해달라고 말하며 출입금지구역이라고 안내하자 부부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죄송하다”고 했다.

‘죄송하다’고 한 60대 부부와 달리 단속에 걸려도 막무가내인 등산객도 있다. 단속 직원들에 따르면 북한산에서 샛길로 다니다 세 번이나 적발된 한 50대 남성은 “내가 쉬고 싶어서 (샛길에서) 편하게 쉬는데 뭐가 문제냐”며 따지기도 했다고 한다. 한 단속 직원은 “과태료를 부과하기 위해 불법행위를 한 등산객에게 이름과 주소 등을 물으면 끝까지 알려주지 않거나 산 아래로 달아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자연공원법에 따라 국립공원 구역 내에서 샛길로 다니다 처음 적발되면 과태료 10만 원이, 두 번째는 30만 원, 세 번째는 5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취사, 흡연, 지정구역 외 야영 등 지난해 전국의 국립공원 내에서 적발된 불법행위는 모두 2067건인데 이 중 샛길 출입이 703건(34%)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샛길 산행을 막기 위해 국립공원공단은 전국의 국립공원에 무인계도시스템까지 갖췄다. 폐쇄회로(CC)TV에 스피커가 달려 있어 샛길에 등산객이 나타나면 ‘정규 탐방로를 이용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북한산에만 장비가 12대 설치돼 있다.

샛길 산행은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올해 8월 지리산에서는 50대 남성이 샛길로 산행하던 중 20m 아래 폭포로 추락해 숨졌다. 정규 탐방로와 달리 샛길에는 사고 위치를 알릴 만한 안내표지판이 없어 구조 요청을 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등산객들이 탐방로 이외의 구역을 자주 지나다니면 야생동물의 생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황보정도 국립공원공단 공원환경처 계장은 “등산객들은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안전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 반드시 정해진 탐방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북한산#샛길산행#비법정탐방로#출입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