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전승민]HUS가 햄버거병이 아닌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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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비과학적인 주장이 대중에게 설득력을 가질 때 사회가 얼마나 큰 손실을 입는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한국인의 유전자는 광우병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이론 하나 때문에 전 국민이 거리로 나선 사실을 우리 국민 대다수가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미국 소가 광우병 위험이 더 크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 새롭게 논란이 되는 사건이 있다. 한 4세 아이가 대장균의 일종인 O-157에 감염돼 생기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에 걸린 것이 발단이다. 피해 아동 가족은 발병 원인을 그날 먹은 ‘햄버거’로 보고 제조 및 판매업체인 ‘맥도날드’를 고소했다. HUS의 또 다른 이름이 ‘햄버거병’. 실제로 아이가 통증을 호소하던 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었다는 점이 이유로 지목됐다.

HUS가 햄버거병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 건 35년 전인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햄버거가 HUS의 원인이 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에 이 병의 발생 원인이 햄버거 때문이라고 확인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이 사실은 인터넷에서 HUS(Hemolytic-uremic syndrome)라는 단어나 문장으로 검색만 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검색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11년 독일에서 일어난 수천 명의 대규모 대장균 감염 사태다. 이 사건 당시 수백 명이 HUS에 걸렸으며 그중 수십 명이 사망했다. 당시 원인은 햄버거가 아니라 유기농 채소로 지목됐다. 소시지로 인해 발병한 노르웨이 사례,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과일이나 채소, 육류 또는 유제품으로 추정하는 루마니아 사례도 눈에 들어온다. 당연한 것이 대장균의 감염 경로는 사람이 먹는 모든 음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HUS의 발병 원인으로 각종 채소, 과일, 고기, 우유, 요구르트, 치즈 등을 들고 있다.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과의 접촉도 원인이 된다. 오염된 손을 입에 대거나 그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어도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물놀이 등을 할 때도 감염된다. 이쯤 되면 HUS를 햄버거병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과연 타당한지 생각해 봐야 한다.

HUS의 원인균인 O-157에 감염되면 3∼8일의 잠복기가 지나야 증상이 나타난다. 감염 원인을 밝히려면 발병 시간부터 3∼8일 사이에 무엇을 먹었는지를 살펴보고, 접촉한 사람이나 동물을 두루 조사해야 한다. 햄버거를 먹은 지 2시간 무렵부터 설사를 시작했다는 주장은 햄버거가 원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도 될 수 있다. 햄버거 업체를 두둔할 의도는 추호도 없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대중의 손가락 끝은 햄버거와 맥도날드를 향하고 있다. 맥도날드 한국지사는 책임 소재가 분명해지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러 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기업체가 피해자에게 책임 의식이 없다’는 공격이 난무한다. 한 누리꾼은 “맥도날드는 사회적 책임 의식이 없으니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전국적인 햄버거 기피 현상도 보인다. 주말에 방문했던 경기도 일원의 한 햄버거 가게 직원은 “최근 일주일 사이 고객이 50% 이상 감소한 것 같다”고 했다.

피해 아동과 가족은 가슴이 찢어질 일을 당했다. 고소를 통해 조사를 요청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기업이 불쌍한 피해자를 배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과연 성숙한 사회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근거 없는 책임론보다는 과학적 조사 결과가 문제 해결의 기준이 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용혈성요독증후군#hus 원인균#햄버거#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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