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삶의 빅딜]LG애드 PD 양시환씨/긴 머리카락 "싹둑"

  • 입력 2000년 2월 27일 19시 21분


“10년 넘게 늘 머리깎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다른 사람들 눈이 두려워서….”

그랬다. LG애드의 프로듀서 양시환씨(31·서울 마포구 공덕동)는 러시아어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부터 러시아의 시인이자 희곡 작가인 마야꼽스키의 삭발이 부러웠다. 아방가르드 풍의 작가였던 만큼 ‘파격’을 서슴지 않던 마야꼽스키의 까까머리가 늘 그의 가슴 한 켠에 있었다.

그렇지만 용기가 없었다. 머리를 자를라치면 먼저 ‘야쿠자처럼 보이지 않을까’ ‘불량해보일텐데…’하는 걱정에 멈칫해야 했다.

지난 달 3일 사소하지만 큰 계기가 찾아왔다. 2년 전 시작했던 검도를 꽤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그 날따라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것.

‘그래, 정신이 산만해진 탓이야….’

그날 머리를 밀었다. 잦은 술자리 등 생활에 절제를 잃었던 게 사실이었다. 머리카락은 ‘세속’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정열의 상징. 삭발하면 스님처럼 세속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민머리로 세상을 대면한 첫 느낌은 뿌듯함에 앞서 머리가 너무 춥다는 것이었다.

이후 생활에 기대 이상의 변화가 생겼다. 머리카락이 없으니(현재 길이는 6㎜) 술집에 갈 생각도 나지 않았다. 광고주에게 새로 만든 광고를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 그들은 두고두고 양씨에게 관심을 보였다. 하다못해 집안 청소에도 머리카락을 주을 필요가 없으니 하루 15분 이상 시간을 벌게 됐다.

단 하나 불편한 것은 주위의 관심. K상사는 “회사에 불만있냐”고, L씨는 “너, 무슨 일 있었냐”고 캐물었다. 하지만 ‘동자승같다’는 칭찬을 듣는 현재의 스타일을 한동안은 지킬 생각이다.

그래도 자꾸 “왜 머리를 밀었나요”라고 물을 때면 양씨는 대답한다.

“화가 고갱이 서른넘은 나이에 가족을 버리고 화가가 된 것처럼, 사실 우리 모두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잖아요.”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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