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기자의 談담]“고객이 샤넬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관심 갖고 돌아오게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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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부문 사장이 밝히는 ‘경영의 한 수’

《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사장을 인터뷰하기까지에는 넘어야 할 두 개의 산이 있었다. 첫째는 샤넬의 까다로운 ‘서면 심사’였다. 샤넬 프랑스 본사는 내가 과거에 썼던 명품업계 기사 세 건과 인터뷰가 실릴 지면을 파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둘째는 일종의 자기검열. 샤넬을 ‘부자들의 전유물’ 또는 ‘여성들의 사치품’으로 안 좋게 보는 일부 시선도 있지 않은가. “동아일보의 단독 인터뷰가 결정됐습니다. 인터뷰는 한 시간입니다.” 3일 서울 호텔신라 스위트룸에서 브뤼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 부문 사장과 인터뷰하고 난 뒤 나는 두 개의 산을 넘었다. 샤넬의 경영은 한국 기업들에 시사하는 ‘한 수’가 있었다. 창조자를 존중하는 경영자의 자세, 가치를 유지하는 비결…. 그는 4일 열린 ‘샤넬 2015·2016 크루즈 컬렉션’ 때문에 한국을 다녀갔다. 》

3일 서울 중구 동호로 호텔신라 스위트룸에서 만난 브뤼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프랑스 본사 패션 부문 사장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화장품은 요즘 전 세계가 벤치마킹하고 있어 언젠가는 한국에도 샤넬과 같은 브랜드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sannae@donga.com
3일 서울 중구 동호로 호텔신라 스위트룸에서 만난 브뤼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프랑스 본사 패션 부문 사장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화장품은 요즘 전 세계가 벤치마킹하고 있어 언젠가는 한국에도 샤넬과 같은 브랜드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sannae@donga.com
한국은 에너지-창의성 넘치는 나라

우리가 만난 스위트룸에는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의 사진 액자와 흰색 수국 화병이 놓여 있었다.

―왜 서울에서 크루즈 컬렉션 쇼를 열게 됐나.

김선미 기자
김선미 기자
“쇼 장소는 시장의 중요도, 비즈니스, 샤넬에 영감을 주는 곳이란 점에서 샤넬의 ‘크리에이터’(창조자)인 카를 라거펠트(82)와 함께 고른다. 샤넬의 한국 진출 24주년도 고려했다.”

샤넬 크루즈 컬렉션은 여행객을 위한 패션을 선보인다. 샤넬은 2000년부터 매년 5월 세계 부호들의 여행지에서 이 컬렉션을 열어 왔다. 샤넬의 ‘아시아 여행’은 2013년(싱가포르)부터다. 지난해엔 두바이, 올해엔 서울이다. 참고로 ‘5’라는 숫자는 가브리엘 샤넬이 특별히 애착을 가졌던 숫자다. 그녀는 샤넬 넘버5 향수의 이름을 지을 때엔 “5가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이 샤넬에 준 영감은 무엇인가.

“한국은 에너지와 창의성이 넘치는 나라다. 한국 연예인들을 만날 때도 그 점을 느낀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쇼를 하게 된 이유는….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와 라거펠트 간에는 미적 유대감이 있다. 샤넬의 2008년 ‘모바일 아트 프로젝트’에서 하디드가 전시관을 지었다. 작년에 샤넬은 DDP에서 ‘문화 샤넬전’도 열었다. 라거펠트는 하디드의 공간에서 패션쇼를 열고 싶어 했다.”

―이번 서울
크루즈 컬렉션이 갖는 의미는….

“쇼의 장소는 한국이지만 전 세계 샤넬 부티크(매장)들을 위한 행사다. 쇼가 끝나면 250명의 바이어가 파리에 모여 마음에 드는 제품을 사갈 것이다. 이번 쇼의 콘셉트와 옷이 각국의 샤넬 쇼윈도에 반영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잠깐. 인터뷰 다음 날인 4일 열린 ‘샤넬 2015·2016 크루즈 컬렉션’을 소개하겠다. 오방색 의자들이 놓인 런웨이로 95벌의 옷이 소개될 때, 나는 놀랐다. 금발 모델들이 머리에 얹어 쓴 한국의 검은색 가체(加체)는 18세기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머리장식을 연상케 했다. 라거펠트는 자신이 새롭게 해석한 ‘샤넬표 한국 스타일’로 동양과 서양의 조화, 과거의 현대의 만남을 시도한 건 아니었을까. 한 점의 나전칠기 가구 같은 드레스, 조각보 재킷…. 알고 보니 일부 옷의 원단은 한국에서 직접 구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샤넬이 해석한 한복을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세계 패션시장에서 조각보의 인기가 치솟을 게 분명하다. 한국과 한복을 샤넬처럼 이렇게 널리 알려줄 수 있는 브랜드가 또 있겠는가. 한국을 대접해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쇼는 각 외신과 유명 인사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개됐다.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샤넬 2015·2016 크루즈 컬렉션’에 소개된 스타일. 샤넬 제공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샤넬 2015·2016 크루즈 컬렉션’에 소개된 스타일. 샤넬 제공
―한국의 고객에게 샤넬은 어떤 가치로 인식되길 원하는가.

“창의성, 세련미, 현대성, 여성성…. 한국에는 두 가지 유형의 샤넬 고객이 있다. 다양한 샤넬 제품을 두루 경험해 온 20년 지기 단골과 샤넬의 핸드백을 이제 막 사는 고객이다. 전자에게는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후자에게는 우리 컬렉션을 보고 샤넬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라고 이번에 한국에 왔다. 핸드백이 샤넬의 패션세계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지만 옷과 구두, 다양한 액세서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샤넬 주력상품은 핸드백 아닌 옷


―샤넬 매출에서 핸드백 매출이 절반 이상인가.

“(크게 소리 내 10여 초간 웃은 뒤) 프랑스식으로 대답하자면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숫자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만(샤넬은 경영정보 공개 책임이 없는 유한회사다), 5년 전부터 핸드백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새로운 고객들이 핸드백을 살 때 이젠 곧바로 명품을 산다. 그런데 샤넬을 이끄는 원동력은 옷이다. 디자인별로 판매되는 건수가 세계 1위다. 샤넬은 브랜드의 뿌리와 창의성이 깃든 옷으로 고객들을 데려올 것이다. 샤넬은 두 달에 한 번씩 1년에 여섯 번 새로운 옷을 선보이고 그에 맞는 액세서리들을 함께 보여준다.”

―샤넬에서 당신은 25년, 라거펠트는 34년을 일해 왔다. 라거펠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전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항상 촉각을 세운다. 과거에서 특정한 것을 가져와 미래를 준비하고, 창조에 대해 끊임없이 갈구한다. 그가 일단 영감을 얻으면 그의 팀이 함께 형태를 만들어나간다. 그와 지적인 친밀감을 느끼며 일하는 게 기쁘다.”

―라거펠트의 영감이 지나치게 창의적이라 경영자인 당신이 반영을 못할 때도 있나.

“(함박웃음). 그런 과정으로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맡은 1차적 책임은 라거펠트와 그의 팀이 새로운 컬렉션을 잘 성공시킬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래야 창의성을 활발하게 가질 수 있다. 나의 2차적 책임은 제품이나 광고, 쇼룸 디스플레이를 통해 전 세계 샤넬 부티크가 가장 아름답게 고객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최적화하는 일이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은 샤넬이 매력적인 브랜드로 반짝이면서 고객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고객이 샤넬을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관심을 갖고 돌아오게끔 만든다.”

―부티크에서의 고객 경험을 강조하는데, 왜 온라인 판매를 시작할 것이란 말이 나오나.

“온라인 판매는 내년부터 향수만 한다. 온라인 판매를 하더라도 오프라인 부티크와 연결시킬 것이다.”

―온라인에서 옷과 핸드백은 살 수 없나.

“향수 이외의 제품은 온라인에서 언제부터 어떻게 팔지 결정된 게 전혀 없다. 온라인몰에 바보같이 죽 물건을 올려놓고 파는 일은 절대 없다. 샤넬 고객이 원하지 않을 테니까.”

파블로브스키 사장이 자신의 손목시계를 흘끗 쳐다봤다. 인터뷰 경과 시간을 확인한 것이리라. “당신의 시계는 샤넬인가요?”라고 묻자 “비앵 쉬르(Bien s^ur·당연하죠)”라며 웃었다. 그런데 라거펠트는 지난달부터 순금 밴드의 ‘애플’ 시계를 차기 시작했다. 애플은 이 스마트 시계를 패션업계가 흔히 쓰는 스타마케팅으로 홍보하고 있다.

한편 명품업계는 샤넬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에 주목한다. 샤넬은 지난해 ‘몬스터 케이블’사(社)와 협업해 헤드폰을 선보였다.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샤넬은 테크놀로지를 중요한 이슈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업 방향을 결정할 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지, 그 결과물은 고객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고려한다”고 말했다.

―샤넬은 몇 년 전 자전거도 내놓았다. 핸드백에 쓰이는 체인과 퀼팅 등 ‘샤넬표’ 디자인 요소 덕분에 ‘샤넬 자동차’도 ‘샤넬 호텔’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 디자인의 확장성으로 사업영역을 늘릴 계획이 있나.

“가끔 특별한 제품을 만들 때가 있다. 자전거, 스키, 럭비공…. 우리 브랜드의 창의성이 이 정도까지 갈 수 있다고 자랑하기 위해 소량을 만들어 비싸게 한정 판매한다. 그러나 우리의 본업은 패션, 특히 옷이다. 앞으로는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패션에만 집중한다. 라거펠트도 늘 샤넬 패션의 핵심을 지키면서 산만하지 않게 재해석해 나간다. 이것이 우리 브랜드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삼성-LG와 협업할 계획 있다

―한국에서도 샤넬 같은 브랜드가 나올 수 있을까.

“(웃음). 좋은 질문이다. 나는 한국의 패션 브랜드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의 화장품은 요즘 전 세계가 벤치마킹한다. 브랜드는 자기만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샤넬에는 가브리엘 샤넬과 프랑스라는 강한 스토리가 있다. 언젠가는 한국에도 명품 브랜드가 나오리라 본다.”

―삼성이나 LG와 협업할 계획이 있나.

“(웃음).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 앞으로 프로젝트별로 협력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부티크를 연결하거나 매장 직원을 연결하는 부분이 될 듯하다. 샤넬은 부티크와 고객 간의 친밀감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얼마 전 샤넬은 대륙별로 가격 조정을 하면서 한국에서 가격을 내렸다.

“샤넬 고객들은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지역별 가격의 일치가 중요하다. 우리는 앞으로 20년을 내다보고 결정했다. 항간에서 말하는 대로 사업이 안 돼서 가격을 내린 게 아니다. 오히려 장사가 잘돼 결정할 수 있었다.”

25년을 샤넬에서 일해 온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자주 환한 웃음을 짓다가도 몇몇 대목에서는 예리한 표정이 되었다. 주로 샤넬의 자신감을 표현할 때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그는 당초 예정 인터뷰 시간보다 10분을 더 내줬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파블로브스키#샤넬#경영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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