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기자의 온사이드]최용수의 의리? 홍명보의 의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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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장쑤 파격 제안 뿌리친 崔감독
총액 50억 뒤의 옵션 때문에 고민說… 결국 서울구단 아닌 자신 위한 선택
2014월드컵 박주영 뽑아 욕먹은 洪
그에게 朴은 꼭 뭔가 보여줬던 선수… 본인이 필요하다 여겨 데려갔을 뿐

꼭 1년 전 오늘. 브라질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휘했던 홍명보 감독(46)이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대표팀은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무 2패로 탈락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16년 만의 무승(無勝) 월드컵. 비난이 빗발쳤다. 대표팀이 조별리그 탈락 후 브라질 현지에서 술자리를 가진 사실까지 드러나자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선수로 4번(1990∼2002년), 코치로 한 번(2006년)을 포함해 6번이나 월드컵 무대를 밟은 홍 감독. 한국 선수 A매치 최다 출전(136경기) 기록까지 갖고 있는 ‘천하의 홍명보’도 “의리 축구 고집하더니 꼴좋다”는 투의 십자포화 비난을 견뎌내지 못했다.

뜬금없이 웬 철 지난 홍명보의 의리 축구? FC 서울 최용수 감독(42)의 최근 행보를 보며 의리 축구가 떠올랐다. 최 감독은 최근 중국 프로축구 장쑤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다. 계약 기간 2년 6개월에 연봉 20억 원. 총액 50억 원짜리 제안이었다. 최 감독은 거절했다. 그러자 돈 대신 소속 팀과의 의리를 택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최 감독은 장쑤 구단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지 않았다. 서울 구단도 “최 감독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래서 (최 감독이) 고민에 빠졌었다”고 밝혔다. K리그 클래식의 한 감독은 “최 감독이 덥석 물기 쉽지 않은 옵션 조항이 있었던 걸로 안다”고 했다. 장쑤는 1부 리그 16개 팀 중 6위다. 중상위권인 팀이 시즌 도중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을 경질했다. 그러고 후임자를 찾는 상황. 후임 감독에게 바라는 성적이 어느 수준일지 대략 답이 나온다. 장쑤 지휘봉을 새로 잡는 사령탑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최 감독은 이것저것 따져보고 궁리한 끝에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소속 구단과의 의리가 아닌 자신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물론 그 결정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다시 홍명보의 의리 축구로 돌아가 보면. 홍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박주영(30·서울)을 포함시키자 팬들은 의리 축구라고 비아냥댔다. 당시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왓퍼드에서도 출전 기회를 못 잡던 박주영을 의리 하나로 뽑았다는 것이었다. 박주영이 홍 감독의 고려대 후배여서 뽑았다는 얘기도 돌았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감독은 없다. 동네 대회도 아니고 월드컵을 준비하는 감독이 실력 없는 선수를 의리 때문에 뽑는다? 감독의 축구 인생이 곤두박질칠 수도 있는데 그럴 수는 없다.

박주영은 홍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한국이 노메달의 위기에 몰렸을 때 홍 감독을 구했다. 당시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박주영은 이란과의 동메달 결정전 후반에 2-3으로 따라붙는 추격 골을 넣었고, 한국은 4-3으로 역전승했다. 홍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던 2012년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3, 4위 결정전에서도 박주영은 선제 결승골로 2-0 승리를 이끌며 한국 축구에 올림픽 첫 메달을 안겼다.

홍 감독에게 박주영은 뽑아 주면 반드시 뭔가를 보여 주는 선수였다. 그래서 홍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때도 욕먹어 가면서 박주영을 뽑았던 것이다. ‘나를 위해, 팀을 위해 이번에도 뭔가를 보여 달라’는 심정으로…. 국가대표팀까지 갈 것도 없다. 일반 회사의 팀장이라도 팀원 구성에 전권을 가졌다면 그동안 같이 일할 때 성과를 냈던 부하부터 뽑는 게 정상이다. 굳이 문제라고 한다면 박주영이 브라질에서는 별로 보여 준 게 없었다는 것. 홍 감독도, 최 감독도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을 뿐, ‘의리’를 갖다 붙여 엮을 일은 아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최용수#홍명보#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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