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의 시의 눈]갈매기 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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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떼 ―서수찬(1963∼)

해변에 갈매기 떼가
내려앉아 있다
사람이 다가오자
일제히 날아오른다
수많은 갈매기 떼가 서로
부딪칠 만도 한데
바닥에는 부딪쳐
떨어져 내린 갈매기가
한 마리도 없다
오밀조밀 틈도 없이 모여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날개를 펼 공간조차 보이지 않았었는데
실상은 갈매기들은
옆 갈매기가 날개를 펼
공간을 몸에다
항상 숨기고 있었다


서산 간월호나 천수만에는 지금쯤 새들의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오밀조밀 빼곡하게 벌판을 덮고 있다가는, 누가 다가가면 날아올라 새까맣게 또 겨울 하늘을 덮겠지. 시는, 모여 있던 갈매기들이 서로 다투는 법도 다치는 법도 없이 하늘을 공유하는 장관을, 거의 보이는 그대로 옮겨 적는다.

세계 인구를 양팔 간격으로 세우는 데는 충청북도만큼의 땅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삼십여 년 전 수업에서 들은 말이니 그동안 세계 인구가 곱으로 늘었다 해도 충청남북도 정도면 전혀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충청도는 작은 땅이고 인간은 그보다도 더 작은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인간에게 세상은 어찌 이다지도 비좁을까.

거리를 두고도 부딪쳐 다치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다. 빈자리로 두면 좋을 간격과 공간을 모질게 소유하려 들기 때문일 것이다. 온 세상이 부동산이 된 시대에 우리는 저마다 성난 인간이 되어 부딪치고 다치며 살아간다. 물론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를 때는 서로 부딪쳐 떨어지는 새들이 없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것이 거의 우연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몸에 숨긴 공간’이란 마음의 숨은 품을 은유한 것이리라. 계산된 배려 없이 제 날개를 곱게 가누는 것만으로도 새들은 안전할 뿐이지만, 시인은 그 모습에서 보이지 않는 공간을 찾아낸다. 밝은 눈에 놀라다가도 그걸 그렇게 잡아낸 힘이 우리의 찌든 삶이란 걸 생각하면 씁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의 온전한 품은 모두가 가지고 태어났을 터이니, 저 새들처럼 잘 찾아내기만 하면 될 것 같다는 기꺼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영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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