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생각돋보기]가면의 미학과 정치학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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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채 ‘복면금지법’ 추진 반대를 외치는 한 집회의 참가자들. 동아일보DB
가면을 쓴 채 ‘복면금지법’ 추진 반대를 외치는 한 집회의 참가자들. 동아일보DB
예술의 차원에서 가면은 고도의 미학적 장치이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인물의 얼굴을 꽃다발, 비둘기, 사과 혹은 나무판으로 가림으로써 강박적으로 사람의 얼굴을 지웠다. ‘연인들’에서 두 연인은 얼굴을 헝겊으로 감싼 채 서로 부둥켜안고 있고, ‘삶의 발명’에는 마치 무슬림의 부르카처럼 온몸에 검은 천을 뒤집어쓴 인물이 그려져 있다.

바로크 시대 이미지에서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도 가장(假裝)무도회의 검은 가면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상대에 대한 욕망의 시선을 숨기는, 그리하여 더욱 강렬하게 상대를 매혹시키는 남자 혹은 여자 주인공들의 가면 뒤의 시선은 거의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역사, 사회적으로는 우리의 탈춤처럼 지배계층의 위선과 부도덕을 마음껏 비판하는 해학의 수단이기도 했다.

11월 14일 폭력적인 광화문 시위로 복면이 문제 된 이후 복면에 대한 상반된 생각은 그대로 우리 사회의 양대 진영을 지시하는 기호가 되었다. 그레마스의 기호 사각형 툴(tool)에 거칠게 집어넣어 보면, 복면을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은 우파요, 감동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좌파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이슬람국가(IS)의 복면을 언급하고, 여당이 복면금지법을 발의하자 야당은 “참으로 어이없는 결정이다.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 “집회 참가자는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는 2003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명백한 위헌적 발상이다”라고 소리를 높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뽀로로 가면을 얼굴에 쓴 심상정 의원의 얼굴과 함께 대통령이 국민을 IS 취급했다느니, 복면가왕도 폐지시켜야겠다느니, 복면만 쓰면 잡아가는 무서운 인권 탄압이라느니, 국가의 폭력이라느니, 세상이 1970년대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느니 온통 저주와 조롱의 언사들로 넘쳐났다. 12월 5일 복면금지법에 반대하는 뜻으로 시위대가 온갖 종류의 가면을 쓰고 거리를 누비자, 한 사회학자는 이를 ‘국가 법치’에 대한 해학적 풍자로 규정하고, 이어서 ‘풍자는 민란의 징후’라고, 동학란과 같은 시대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럼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 6500만 인구 중 500만 명이 무슬림인 프랑스는 2010년에 ‘공공장소에서의 복면 금지법’을 통과시켜 2011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오토바이 운전자와 공사장 인부의 안전용 복면 같은 것은 물론 허용된다. 카니발 같은 특정의 축제 기간에도 복면이 허용된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얼굴을 내놓고 머리만 감싼 스카프는 괜찮지만,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히잡이나 몸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는 입을 수 없게 되었다. 무슬림이 아닌 백인이 시위에서 복면하는 것도 물론 당연히 금지된다. 이 법을 어기면 150유로 상당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캐나다 등에서도 모두 가면 시위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며칠 전 한 사진작가는 부처님 얼굴에 가면을 씌운 합성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고는 “무섭다. 사람은 마스크를 쓰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이중거짓말 능력을 가진 직립보행 동물이다”라고 썼다. 재미있는 생각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가면을 쓴 부처, 또는 가면을 쓴 예수를 떠올려 본다. 인디아나 존스 같은 분위기 혹은 쾌걸 조로나 산적 로빈 후드 같은 이미지가 나올 뿐 인류 전체를 품는 자애로운 성인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만다. 가면은 역시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좋겠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복면금지법#가장무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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