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쉽게 지우고 고칠 수 있는 치명적 유혹 SNS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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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는 세월호 관련 집회 참가자들에 대해 ‘일당 6만 원을 받고 하는 일’이라는 잘못된 내용의 글을 올려 비난을 받았다. 정미홍대표트위터캡처
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는 세월호 관련 집회 참가자들에 대해 ‘일당 6만 원을 받고 하는 일’이라는 잘못된 내용의 글을 올려 비난을 받았다. 정미홍대표트위터캡처
1년여 전 일이다. 모 기업이 벌이고 있는 녹차 사업 현장을 보러 제주도로 출장을 갔었다. 출장 간 그날 취재를 마치고, 바로 기사를 쓰게 됐다. 기사는 경제면 톱기사로 보도됐다. 다들 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다음 날 오전 7시경, 함께 갔던 해당 기업 홍보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기사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창업주이자 선대 회장이었던 고인(故人)의 이름을 잘못 적은 것이었다. ‘성’으로 써야 할 곳을 ‘정’으로 쓴 것이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미 신문은 전국으로 뿌려진 뒤였다. 기자는 숙소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벽에 머리를 쿵쿵 찧었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한 걸까. 부제목에 큼지막하게 들어간 이름 석 자가 왜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걸까.’

홍보 담당자도 덩달아 풀이 죽었다. 회사에 돌아가면 ‘창업주 이름을 잘못 나가게 했다’는 질책을 받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결국 기사 내용을 정정하는 ‘바로잡습니다’를 써야 했다. 2500자 기사 중에 딱 한 글자, 그중에서도 딱 한 획 때문에. 단어 하나, 글자 하나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진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틀렸다’만큼은 아니지만, 기자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말은 또 있다. 바로 ‘강판(降版)’이라는 말이다. 강판이란 지면 제작을 끝내고 인쇄 직전 단계로 넘기는 것을 말하는데, 강판 이후에는 원칙적으로 기사 변경이 불가능하다. 강판 직전이 기사를 수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일종의 ‘돌아올 수 없는 강’인 최종 강판을 앞두면 기자들의 골치가 아파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종이에 인쇄되어 이렇게 수정하기 힘든 신문기사에 비하면 인터넷은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다. 오타를 수정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혹여 내용이 잘못됐다면? ‘착오였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하나 더 올리면 그만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조용히 ‘자삭’(자진 삭제의 준말)하는 방법도 있다.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다’는 건 긴장을 늦춘다. 그러다 보니 오류를 넘어 없는 이야기를 사실인 양 무책임하게 전파하는 사람들이 큰 문제를 낳곤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몇몇 사람이 경찰 수사까지 받았다. 이들은 ‘현장 책임자의 방해로 구조를 못하고 있다’는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거나, ‘살아 있으니 얼른 구조해 달라’는 가짜 문자메시지를 만들어 유포했다. 누리꾼들은 이들을 ‘관심병 종자’(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무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인터넷 용어)라고 부른다. 일반 시민들이 미치는 파급력이 이 정도인데, 수만 명의 팔로어를 지닌 ‘공인’이라면 어떨까.

약 2만9000명의 팔로어를 가진 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는 최근 트위터에 잘못된 사실을 적었다가 하루 종일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망신을 당했다. 정 대표는 4일 자신의 트위터에 “많은 청소년이 서울역부터 시청 앞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제 지인이 자기 아이가 시위에 참가하고 6만 원의 일당을 받아왔다고 한다. 참 기가 막힌 일”이라는 글을 올렸지만 ‘일당 6만 원’은 근거가 없는 낭설이었다. 정 대표는 뒤늦게 글을 삭제하고 사과했지만 누리꾼들의 거센 비난은 그칠 줄 몰랐다. 정 대표의 트위터 계정은 승인된 팔로어에게만 공개되는 비공개 페이지로 바뀌었다.

SNS는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정 대표의 사과 글을 보지 못하고 ‘6만 원 알바설’만 본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지 않을까. 쉽게 지우고 고칠 수 있다고 해서 책임마저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권기범 소비자경제부 기자 kaki@donga.com
#SNS#정미홍#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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