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盧 前 대통령만한 국회의원 안보인다

  • 입력 2008년 12월 11일 03시 03분


아무래도 이젠 우리나라의 대통령책임제 정부는 신뢰가 바닥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대서 그게 땅을 치고 비통해 할 일은 아니다. 그것 말고도 내각책임제 정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필 씨에게 내각책임제 개헌을 약속해서 이른바 DJP(DJ+JP)연립으로 대권을 장악한 당시 김대중 후보의 말이야 옳은 말이지 내각책임제도 민주주의이다.

대한민국의 지난 60년 헌정사는 단 한 분도 국민의 존경을 받고 어엿하게 자리를 물러난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했다. 대통령으로서 복이 없는 일이라 하겠으나 그 이상으로 국민이 복이 없는, 그야말로 국운의 비색이다. 반세기 넘도록 대통령제의 시행착오를 거듭했으면 이젠 ‘다른 민주주의’를 시도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책임제론 안 되겠다는 것을 몸으로 입증하며 국민을 계몽해준 면에선 모든 대통령이 그동안 공헌해줬다. 물론 처음에는 그것을 어느 특정 대통령의 실책이나 결함으로도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에는! 하고 새 인물을 새 기대로 뽑아 놓고 보면 돌아오는 것은 노상 실망과 배신뿐이었다. 문제는 어느 누구냐가 아니라 누가 돼도 별 수 없는 대통령책임제란 제도에 있다.

대통령제 위험성 온몸으로 증명

나는 이 점에선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적에 가장 큰 감사를 빚지고 있다. 그는 아무도 못 알아들을 수 없는 분명한 말로 내놓고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는 실토를 해줬고 그 뒤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대통령책임제의 보기에도 아찔할 것만 같은 위험성을 여러 번 시위해줬다.

대통령의 실패가 거론될 때마다 흔히 듣는 얘기가 실패한 대통령을 뽑은 유권자 국민의 책임론이다. 어느 나라나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런 얘기 듣기가 좀 억울하다.

도대체 국가원수를 모든 국민이 내 손으로 뽑는다는 대통령 직선제란 유권자도 “국민 노릇 못해먹겠다”고 내뱉지 않을 수 없는 엄청난 부담이다. 나는 대통령 자리가 교향악단의 지휘자, 축구 대표팀의 감독, 현대미술관의 관장 자리보다 훨씬 중요하고 직무수행을 위해선 높은 경륜과 도덕적 품성이 요구된다는 것, 어찌 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이 사실을 여기에 정색을 하고 새삼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한 대통령을 모든 유권자가, 인격이 고매한 사람이나 전과 경력이 많은 사기한이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나 전혀 없는 사람이나, 또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제 나라를 저주하는 사람이나 똑같은 한 표를 던져 선출해도 괜찮은 것인지. 그렇다면 교향악단의 지휘자, 축구 대표팀의 감독, 또는 현대미술관의 관장도 국민 직선제로 뽑아 괜찮다는 말인가. 물론 그건 음악이나 스포츠, 또는 현대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에겐 무리한 요구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만은 국민 누구나 뽑을 수 있다고 직선하자는 것인가. 그럴 수 있는 것인가.

다행히 대통령책임제 말고도 민주주의에는 내각책임제라는 대안이 있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의회민주주의만은 다른 대안이 없다. 과거 소련이나 독일에선 의회를 바꿔 치울 ‘소비에트’, 또는 ‘레테(Raete)’라고 하는 이른바 ‘평의회’ 민주주의가 등장했다. 그러나 그건 의회를 말살하고 계급 독재를 수립하기 위한 사이비 민주주의임이 역사적으로 밝혀졌다. 쿠데타 후에 군부가 들고 나오는 ‘훈타(Junta·최고회의)’도 마찬가지다. 입법부에는 의회밖엔 민주주의의 대안이 없다. 의회의 존재, 의회의 권위와 존립 의의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킨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일이다.

국회 필요성 증명할 의원은 없나

요즈음 우리 국회를 보고 있으면 저런 국회가 도대체 있을 필요가 있는지 회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나도 정말 걱정이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책임제가 안 되겠다는 것을 온몸으로 국민에게 가르쳐주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국회는 절대로 존재해야 할 값어치가 있고, 민주주의를 위해선 어떤 다른 대안도 없는 고귀한 전당임을 온몸을 던져 시위해주는 국회의원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러한 선량이 눈에 띄지 않으니 이건 큰일 아닐까.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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