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진보의 금기를 깨시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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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지지율 10%대로 추락
통일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안보는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
공공개혁 구조조정 규제철폐 ‘富者 입법’ 프레임으로
사사건건 반대만 외쳐서야 무책임 시민단체와 뭐가 다른가

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민주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 문재인 의원은 그제 차기 대선 출정식 같은 북콘서트에서 “박근혜 정부 1년 동안 국민들께서 더 고통스러운 퇴행을 겪게 돼서 더더욱 아팠다”고 했지만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13일 갤럽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54%였다. 민주당이 “공안정국” “공포정치”를 외쳐도 대선 득표율보다, 같은 시기의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22%)보다 높은 수치다. 민주당 좋다는 응답은 19%로 추락했다. 문재인이 대선 득표율 48%가 순전히 자기 표인 양 “2017년에는 반드시 목표를 이룰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요즘 민주당 인기가 말이 아닌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선 패배 뒤 부족했던 부분을 더 채워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말은 옳되 맹점이 있다. 부족했던 부분이 뭔지, 계파와 이념에 따라 답이 다른 것까진 좋다. 하필 가장 점수 못 받는 목소리가 당을 몰고 가서 이 지경이 됐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더더욱 아플 뿐이다.

야권은 대통령의 해외패션쇼와 보수언론의 편파성 때문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경향신문의 한 칼럼은 진보개혁적 이념 불분명성과 야성 부족, 개혁 결핍을 민주당 3대 위기 요인이라고 했다. 더 가열차게 투쟁하지 않으면 안철수 신당에 밀린다는 경고 같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질 때마다 나왔던 단골 주장이다. 소련 붕괴 뒤에도,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뒤 유럽의 좌파정부가 판판이 아웃될 때도 사회주의를 제대로 못해서라는 주장은 죽지도 않았다.

모든 나라가 자기들만 특별하다지만 우리는 ‘안보와 통일의 딜레마’ ‘세계화와 민주화의 딜레마’에 빠진 세계에서 유일한 경우라고 세종연구소 엄상윤 연구위원은 갈파했다. 한국적 이중딜레마를 둘러싼 노선갈등 양극화에 대한 2010년 논문에서다. 거칠게 요약하면 통일과 민주화를 중시하는 종북좌파,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사회를 갈등으로 몰고 간다는 뜻이다.

해법을 교과서적으로 찾자면 ‘안보와 통일, 세계화와 민주화를 조화롭게 추구해야 한다’가 될 터다. 하지만 세상은 교과서적이지 않다. 보다 전략적이고 명쾌한 답은 ‘통일은 없어도 살지만 안보는 없으면 못 산다’이다. ‘민주화는 우리 힘으로 조정할 수 있지만 세계화는 그게 안 된다’가 현실이다.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에, 개방경제로 먹고사는 우리로선 도무지 물러설 데가 없다.

민주당이 암만 ‘종북몰이’를 비난해도 대통령에게 박수 치는 국민이 더 많은 이유가 여기 있다. 1년 전 박근혜 후보에게 갔던 표의 상당수는 민주당의 안보관이 못 미덥고 보편적 복지국가론이 당치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잔혹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은 대통령이 바뀌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안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1년째 대선 결과를 물고 늘어지는 건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거다.

문재인이 이대로 계속 가는 건 개인 자유다. 극렬한 소리를 안 내면 설 자리가 없다고 믿는 선동가 지식인들이나 시민 없는 시민단체는 두려움 없이 주장하기 바란다.

정당은 달라야 한다. 민주당이 이대로 주저앉지 않으려면 경로를 재탐색할 필요가 있다. 과거정부의 햇볕과 포용정책이 ‘최고의 안보’라는 문재인 안보관에 매여 있어선 집권 못한다. 안보와 통일의 딜레마에서 자유로운 유럽의 좌파도 수구적 경제논리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중이다. 오죽하면 우크라이나의 공산당 정부가 레닌의 동상을 깨부순 시위대에 밀려 유럽연합(EU)과 협력 협정을 체결하겠다고 발표했겠나.

진보적 경제학자로 이름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그나마 보수진영은 대선을 거치면서 진화했지만 진보진영은 자기들이 옳았다며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쪽 진영에서 ‘변절자’로 찍히면서까지 요즘 강조하는 말이 “진보의 금기를 깨라”는 거다.

을(乙)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좀비기업의 구조조정에, 공기업 귀족과 한 줌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사정 담합에 침묵하는 금기는 버릴 때가 됐다.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서비스업 진입장벽 폐지에 반대를 일삼는 습관도 버려야 한다. 기득권 이기주의에 목을 매는 수구좌파 논리에 빠져 세계와 거꾸로 갈 순 없다.

대통령이 잘못한다고 보지만 지지정당은 없어 마음 붙일 데가 없는 국민이 전체의 3분의 1이다. 민주당이 문재인 마인드를 끊어내야 이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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