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재영]‘무작정 단식’만으론 집값 거품 안 빠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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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산업2부 차장
김재영 산업2부 차장
다이어트 방법은 다양하지만 살 빼는 원리는 단순하다. 인풋보다 아웃풋이 많으면 된다. 적게 먹거나 더 많이 움직이거나.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단시간에 승부를 보려는 조급증도 주요한 실패 요인이다. 그래서 인풋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단식을 선택하곤 한다. 운동은 고생도 고생이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단기 처방은 초기에는 효과를 보인다. 체중계에 올라갈 때마다 줄어드는 눈금을 보며 많은 이들이 ‘이번엔 독하게 마음먹고 기필코 빼리라’ 다짐하곤 한다.

현 정부가 선택한 집값 다이어트 방법 역시 일종의 단식이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한도 축소,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 연장, 공시가격 및 보유세 인상 등의 대책을 쏟아내며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는 투기 수요를 차단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무섭게 오르던 눈금이 꺾이기 시작했다. 서울 아파트 값은 지난주까지 16주 연속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년 뒤 집값에 대한 소비자들의 전망은 2013년 1월 이후 가장 비관적인 수준이다.

살이 빠져서 좋긴 한데 몸에 무리가 간다는 신호도 나온다. 거래가 올스톱돼 시장에 피가 돌지 않고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1년 전보다 86% 줄었다. 2월 거래량으론 2006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적었다. 2년 전보다 전세금이 떨어지는 ‘역전세’,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상환할 수 없는 ‘깡통전세’ 등도 부쩍 늘었다. 미분양도 다시 늘기 시작했다. 대구 광주 대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지방 부동산 시장은 빈사 상태다.

내려가는 눈금에 흡족한 정부는 몸에 무리가 나타나는 신호엔 눈을 감는다. 대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은 살 빼기를 방해하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여기는 듯하다. 고용지표 악화를 ‘소득주도성장의 성장통’이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집값 잡기에 최우선 목표를 두다 보니 현실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지난달 28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미분양관리지역’ 발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28일까지만 해도 과열 조짐이 있어 ‘청약조정대상지역’으로 묶였던 부산 부산진구를 두 달 만에 침체 조짐이 있다며 ‘미분양관리지역’으로 바꾼 것이다. 실제로 두 달 만에 시장 상황이 급변했다기보다는 집값 억제를 위해 청약조정대상지역 해제를 늦게 한 측면이 크다.

경기 고양시에 대한 판단은 한술 더 떴다. 국토교통부가 청약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해 둔 상태에서 HUG는 다시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HUG는 하루 만에 고양시를 미분양관리지역에서 제외하는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였다. 집값이 뛸 우려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일단 묶었다가 풀 때는 늦장을 부려 생기는 해프닝이다.

집값에 거품이 있고 연착륙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진단에는 동의한다. 단기적으로 충격요법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집값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시장이 동맥경화에 빠지지 않도록 거래의 물꼬를 열어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방 주택시장의 침체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핀셋 처방도 필요하다.

무작정 굶는 다이어트의 끝은 폭식과 요요다. 균형 잡힌 식단과 적당한 운동을 병행하는 건강한 다이어트가 답이다. 억지로 수요만 눌렀다가 몇 년 후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집값 폭등으로 이어졌던 학습효과가 아직 우리에겐 생생하다.

김재영 산업2부 차장 redfoot@donga.com
#집값 상승#깡통전세#역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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