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소연]보육은 국가의 책임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엄마들 가슴 졸인 한유총 사태, 근본 원인은 보육서비스 민간 쏠림
노인-의료 정책도 민간 의존 과다
사태 재발 땐 사회적 약자 타격… 국가가 나서 공적 영역 흡수해야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최근 며칠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이 있는 가정들은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연휴 직전에 유치원 집단 휴원 방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강력한 대응과 아이들을 볼모로 한다는 비판 여론에 하루 만에 휴원을 철회하기는 했지만, 월요일을 앞두고 연휴 내내 수많은 가정이 어려움과 혼란을 겪었다. 이번 사태는 비교적 순탄히 봉합되었지만,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은 여전하다.

한유총을 국가 보조금을 유용하고 보육비를 횡령하는 집단으로 ‘악마화’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복지서비스의 민간위탁이다. 보육이라는 중차대한 공적(公的) 서비스를 민간 영역이 담당하고, 그 결과 50여만 명에 달하는 어린이가 국공립이 아니라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상황 자체가 문제다.

한국은 지금까지 복지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민간에 의존해 왔다.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35개국 중 34위로 최하위다. 보육만이 아니다. 고령인구 증가에 따라 급속도로 늘고 있는 요양병원을 비롯한 노인 돌봄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도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인데, 노인복지도 사적 영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려면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소진해야 한다. 집에 노인을 전담해 보살필 사람이 없는 현실에서 많은 가정이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거나 요양병원 입소를 고민한다. 그리고 이 서비스는 대체로 사적 영역에서 제공받는다. 요양병원이나 노인보호센터는 늘고 있지만 서비스의 질은 불안정하다. 보조금을 유용하거나 치매나 장애로 의사표현이 어려운 입소자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심지어 명단을 서로 팔아넘기는 사건도 잊을 만하면 일어난다.

더 살펴보자면, 해마다 논란인 지하철 무임승차도 결국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문제다. 노인복지는 국가가 담당하고 감당해야 하는 것인데, 이를 지하철공사라는 준(準)민간 부문에 떠넘겼다. 지하철공사는 고령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와 손실을 호소한다. 그때마다 대상 연령을 높이자는 둥 출퇴근 시간 무임승차를 제한하자는 둥 말만 많다가 결국 일하는 청년과 무료한 노인의 세대 간 갈등이라는 식으로 왜곡된다.

이는 애당초 지하철 무임승차가 대상 연령이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통 접근권은 국가가 평등하고 균일하게 제공해야 하는, 공적 영역에서 부담해야 하는 복지서비스다. 전체 노인인구 중 지하철이 있는 지역에 사는 노인 일부에게만 지하철공사라는 기업을 거쳐 교통복지를 제공하는 설계 자체가 잘못됐다. 사적 영역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 복지서비스 제공자 역할을 해 온 결과다.

공적 영역, 특히 보육이나 요양처럼 약자를 대상으로 하고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복지서비스를 민간에 의존하는 이상, 약자인 보호 대상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삼는 유사한 사건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복지가 민간에 의존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경제 발전보다 복지지출의 우선순위가 낮은 탓도 있고, 사적 영역이 복지서비스를 이미 담당하게 된 다음부터는 이를 다시 국가의 역할로 회수하기가 쉽지 않은 탓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민간 주체들이 여러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확보한 경험과 전문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복지는 사적 영역의 선의가 아니라 공적 영역의 체계에 의해 제공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9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고, 총인구 대비 노인인구도 매년 1% 이상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총인구 대비 복지서비스 필요 인구 비율이 높은 사회의 복지를 언제까지나 민간에 의존할 수는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서비스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민간 의존적인 기형적 구조에서 발생한다. 민간에 대한 감시비용을 높이기보다는 복지서비스를 공적 영역으로 흡수해야 할 때가 됐다.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한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한유총#유치원#복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