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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龍’과 대물림[횡설수설/서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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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龍’과 대물림[횡설수설/서영아]

서영아 논설위원 입력 2019-11-27 03:00수정 2019-11-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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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에서도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을 가리켜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한다. 당대에 계층 상승을 이뤄내고 예전의 자신과는 다른 인생을 구가하게 되며 가족에게도 좀 더 좋은 생활환경과 미래를 제공하는 이들이다. 이런 개천용은 정치경제적 변화가 극심한 시기, 고도성장기 등 역사가 역동적으로 움직일 때 태어날 틈새가 생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우리 땅에서는 그런 기회가 많지는 않았던 듯하다. 조선 후기까지는 신분제에 묶여 계층 이동의 기회가 제한적이었다. 과거시험에 급제해 금의환향하는 스토리가 전해지지만, 사실 과거도 신분에 따라 응시 조건부터 급제 이후의 대우가 모두 달랐다고 한다.

▷1950∼198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기는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양반 평민 천민 등 신분이 사라지자 한국인들은 교육의 힘에 주목했다. 없는 집이라 해도 자식을 도시로 보내 논 팔고 소 팔아 교육에 보탰다. 부모들은 “내 자식은 나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안고 지원했고, 자식들은 그 기대에 보답하려 노력했다. 그 덕에 대한민국의 정관계와 재계를 이끄는 개천용들이 양산됐다. 고졸 출신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필두로 빈농 아들의 주경야독, 고시생의 성공 스토리 등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마주해온 사회 지도자들의 상당수가 이런 예가 되겠다.


▷고도성장기가 끝나면서 개천용의 신화도 막을 내리는 걸까. 우리 사회에서 계층 이동의 꿈을 꾸는 사람이 줄고 있다는 소식이다. 25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자녀 세대의 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국민은 28.9%로 10년 전의 48.3%보다 19.4%포인트 줄었다. 자신의 현재 계층이 낮다고 인식할수록 계층 상승에 비관적이었다. 원인으로는 교육 등의 채널이 더 이상 계층 상승 사다리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꼽혔다. 가령 의사나 법관이 되려면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등 비용이 많이 드는 단계를 더 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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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용 신화가 사라진 자리엔 부모에 따라 자녀의 경제·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이른바 ‘수저계급론’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에 따르면 부모가 고위공무원, 전문직인 자녀가 같은 직군에 취업하는 비율은 32.3%로 단순노무 종사자 자녀(16.6%)에 비해 훨씬 높았다. 사람은 미래에 가능성이 있다고 느껴야 꿈을 부려놓고 노력할 수 있다.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사회를 만들려면,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는 틈새를 자꾸 열어주고 기회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작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개천용#고도성장기#수저계급론#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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