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2053년 서울 풍경 “소풍이 뭐예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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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2019년 들어서자마자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회색의 하늘과 뿌옇게 차폐된 대기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내내 미세먼지 마스크를 쓰고 다녔는데도 기관지 염증은 악화됐다. 연신 기침을 하며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각해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다. 기후변화로 미래에는 미세먼지가 더 악화될 거란다. 인류 모두가 미세먼지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차이: 파란 하늘을 본 적 있어요?

왕후이칭: 푸른 기가 있는 하늘은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차이: 하얀 구름은 어때? 본 적 있어요?

왕후이칭: 아뇨, 없는데요.

미세먼지를 주제로 만든 중국 다큐멘터리 ‘언더더돔(Under the dome)’에 나오는 대화다. 이 장면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하얀 구름을 본 적이 없는 중국의 어린이들. 이들에게 구름의 색은 검은빛, 진회색이다. 이 영상은 한 앵커가 어린 딸의 암 발생이 중국의 심각한 미세먼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피해를 막기 위해서 만들었다. 제작하면서 그는 중국의 디스토피아적인 미세먼지의 현실에 절망한다.

미래 한국의 미세먼지가 중국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 예측하는 영상도 있다. 한국의 웹드라마 ‘고래먼지’의 한 장면이다. “공기 썩기 전에는 ’벚꽃엔딩‘ 들으면서 봄만 되면 소풍 나갔었는데….” “소풍이 뭐예요?” 2053년의 서울 풍경이다. 극심한 미세먼지로 방독면 없이 외출하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다. 보이는 것은 다 무너진 황량함이고 다시 볼 수 없게 된 봄 풍경은 노래로만 남아있다.

“잿빛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존재마저도 지워버리는 스크린 속 미세먼지는 차라리 공포다.” 한국 영화 ‘낯선 자’의 이야기다. 미세먼지가 너무 심한 나머지 창문을 꽁꽁 싸매 집 안은 대낮인데도 깜깜하다. 맑은 공기를 찾아 집에 침입한 거지를 피해 온 힘을 다해 도망친다. 그러나 바깥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자욱한 미세먼지 세상이다.

서양으로 가보자. 필자에게 최근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가 ‘인터스텔라’다. 인터스텔라의 전제는 지구 기후변화다.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파괴 등으로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으로 변해 간다. 인간의 탐욕으로 지구 산소의 양도 줄어든다. 지독한 미세먼지가 지구를 덮는다. 미세먼지는 강력한 산성오염물질이다. 나무도 풀도 자라기 힘들다. 식량의 감산으로 옥수수 외에는 먹을 것도 없다. 이제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는 것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도 우울한 하늘과 산성비가 등장한다.

“마침내 미세먼지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프랑스 영화 ‘인 더 더스트’의 광고카피다. 파리에 지진과 함께 미세먼지가 차오르는 사상 초유의 재난이 발생한다. 파리 시민의 60%가 죽는다. “최첨단 인공지능으로 병을 치료하는 미래이지만 미세먼지만은 국가도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감독은 말한다. 필자는 대학에서 미세먼지를 강의할 때면 이 영화들을 보여준다. “우울하지만 이게 지구와 인류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미세먼지#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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