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복지강국이 앓고 있다]<10>독일, 국민 희생과 정부 개혁의 ‘건배’
더보기

[복지강국이 앓고 있다]<10>독일, 국민 희생과 정부 개혁의 ‘건배’

동아일보입력 2011-02-15 03:00수정 2011-02-18 15:22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복지 票퓰리즘’ 이겨내고 개혁… 금융위기에도 끄떡없었다 독일 실업자 브리가테 씨(39)는 3년째 장기실업수당을 받고 있다. 그가 회사에서 해고된 첫해 전년도 소득의 67%가 실업 수당으로 나왔다. 1년이 지나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장기 실업자로 분류돼 매월 장기실업수당 359유로(약 53만8500원)가 나왔다. 부인과 자녀 앞으로 나오는 수당을 합하면 그의 가족에게 매달 들어오는 돈은 1436유로(약 215만4000원). 최근 새로 이사한 집에서 구입한 소파와 식탁 비용도 영수증을 노동청에 제출하자 모두 지원받았다.

독일의 복지 체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끄떡없이 사회적 약자를 지키고 있었다. 위기가 닥치기 전에 선제적으로 개혁하고 사회보험에 대해 정교한 재설계를 거쳤으며 민간자원을 활용한 덕이었다.

○ 소득 30%가 복지 세금과 보험료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장기실업수당을 받아 간 실업자는 100만 명. 이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총 670만 명이 실업수당금을 지원받았다. 독일 정부가 지난해 이에 들인 비용만 46억4000만 유로다.

관련기사

실업수당의 재원은 주로 근로자들에게서 거둔 보험료다. 한 달에 3000유로(약 450만 원)를 버는 미혼의 스벤 밀러 씨(38)는 소득의 36.5%를 세금으로 낸다. 연금보험으로 298.5유로, 실업보험으로 45유로, 건강보험으로 246유로, 간병인 보험으로 29.25유로를 부담한다. 한 달 월급의 3분의 1을 매달 납부하는 셈이다. 지난달 27일 만난 알폰스 슈미트 프랑크푸르트 경제노동문화연구소 부소장(68)은 “독일의 복지 정책이 계속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일할 능력이 있는 국민이 상당한 비용을 세금으로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독일의 ‘비싼 복지’가 유지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대를 찾았다. 이 대학 디터 되링 사회학·금융경제학 교수(72)는 “독일의 복지정책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분단과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완성됐다”고 말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매번 실업률이 치솟았고 화폐가치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진 경험을 갖고 있는 독일인들이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굳건한 사회보장제도에 동의하고 있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그는 “자신이 내는 세금이 사회 안정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을 믿는 독일인들은 세금 납부를 아까워하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긴다”며 “독일 복지정책의 밑바닥에는 연대의식이 깔려 있다”고 덧붙였다.

○ 연금과 건강보험에 대한 선제적 개혁

무료유치원의 힘은 탄탄한 재정 지난달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유치원에서 원아들이 미술 수업을 받고 있다. 사회복지 재원이 든든한 덕에 이들의 수업료는 무료이고, 원아들 부모는 매달 양육수당을 받는다. 프랑크푸르트=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지금과 같은 독일의 든든한 사회보장체계도 1990년대 동서독 통일 이후 그 틀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동독 주민들을 서독 정부와 국민들이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강성 노조가 “근로자 혜택을 늘려 달라”며 사민당 정부를 압박하자 공적연금과 건강보험의 재정도 흔들거렸다.

하지만 ‘근로자의 친구’ 사민당 정부는 이 같은 사태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2004년 사민당 정부는 공공연금 기금이 부족하자 퇴직자 과세 정책을 내놓았다. 2025년까지 연간 소득 2만 유로 이상인 근로자는 연금을 받을 때 세금을 내야 하는 정책이었다. 연금 가입자의 56%가 과세 대상자였다. 연금 가입자의 반발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연금이 국가재정을 압박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세대가 위험하다는 게 사민당 정부의 인식이었다.

독일의 건강보험제도는 환자들이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10유로에 가까운 진료비를 내지만 지역조합이 의료 지출을 통제하는 조합형을 유지하고 있다. 의료보험조합은 약값이 보험재정에 부담이 되면 보험에서 제외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 같은 제도도 재정 안정에 부족하다고 보고 의료복지에 경쟁 요소를 도입했다. 소득이 일정 수준 넘는 근로자는 민영건강보험을 선택할 수 있게 했으며 보험사와 병원 간 경쟁 강화, 병원 소유권 민영화, 공공 병원과 민간 병원 간 환자 진료 데이터 공유 등의 개혁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연금과 건강보험 개혁은 2000년대 초반 당시에는 가입자의 혜택을 줄이는 ‘독’으로 보였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사회 안전을 지키는 ‘약’이 됐다. 최근 독일에서는 안정적 복지체제를 바탕으로 장기실업 수당을 늘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조병휘 KOTRA 구주지역본부장은 “실업자에 대한 지나친 혜택으로 근로 의욕 저하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혜택을 기대해도 좋을 정도로 사회보장제도 재정은 안정돼 있다”고 전했다.

○ 정밀한 재설계와 민간자원 활용

독일정부는 연금과 건강보험을 개혁할 때 인구노령화에 맞춰 갑작스럽게 혜택을 낮추진 않았다. 연금은 2005년부터 2029년까지를 과도기로 설정하고 수령자 연령을 단계적으로 67세까지 높이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도 2007년부터 2030년까지 52%에서 43%로 낮추는 방식으로 재설계됐다. 건강보험도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진료비를 많이 쓰는 세대의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고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시가 속한 헤센 주정부는 지난해 9월 ‘가족카드’를 새로 만들었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가정에 보육과 보험, 할인 혜택을 추가로 제공하는 제도다. 카드를 받은 가정은 보육시설 이용비 및 자녀 상해보험비를 면제받고 육아도우미를 지원받을 수 있다. 주정부가 이에 들인 예산은 지난해 40만 유로(약 6억 원), 올해 60만 유로(약 9억 원)에 불과하다. 주요 기업들을 후원사로 끌어들인 덕에 재원 문제가 해결됐다. 이정호 프랑크푸르트 영사는 “주정부가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홍보 기회 제공을 조건으로 85개 이상 주요 기업들을 후원사로 참여시켜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크푸르트=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슈뢰더의 뚝심, 선거는 졌지만 개혁은 이겼다 ▼

독일의 공공연금과 건강보험 등의 복지체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회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회보장제도도 동·서독 통일 이후에는 크게 흔들렸다. 또 국가의 장래와 재정 안정을 위해 혜택을 축소한 정치인이 낙선하는 역설을 낳기도 했다.

기민당 헬무트 콜 총리는 1990년 총선을 앞두고 동독의 표심을 얻기 위해 복지 지출을 과도하게 늘렸다. 그 결과 1872조 원의 국가채무가 쌓였다. 콜 총리는 1992년 국가 재정을 압박하던 연금 수령액을 조금 줄이는 연금개혁에 손댔지만 재정 안정은 요원했다.

콜 총리가 남긴 국가채무는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사진)가 떠안았다.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고 집권한 슈뢰더 총리는 사회보장체제에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했다. 슈뢰더 총리는 연금개혁 초반에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2000년 연금 지급 연령을 높이려고 했지만 노조와 고용주 등 이해집단 간 의견조율에 실패해 개혁이 수포로 돌아갔다. 노조는 그를 “배신자”라고 부르며 등을 돌렸지만 슈뢰더 총리는 여기 굴하지 않았다. 그는 복지전문가들을 끌어들여 2001년 5월 연금 수령액을 소득의 60%에서 54%로 낮추는 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슈뢰더 총리는 2003년 10월 차기 총선에서 패배를 감수하더라도 연금개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연금제도를 그대로 방치하면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재정 안정화에 초점을 둔 당시의 연금개혁은 현 연금체제의 골격이 됐다. 슈뢰더 총리는 연금 수령액을 현행 소득의 53%에서 2020년 46%, 2030년 43%로 줄이고 연급 수급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연장했다. 슈뢰더 총리가 이런 개혁을 추진하면서 그에 대한 지지율은 급속히 떨어져 결국 그는 2005년 총선에서 패배했다.

슈뢰더 총리를 물리친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도 2007년 2월 독일 건강보험 경쟁강화법을 수정하는 등 사회보장제도를 더욱 조이고 있다. 건강보험 가입의무가 없는 고소득자(전년 소득 4만7250유로 이상) 20만 명도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시켰고 건강증진기금의 재정건전도가 떨어질 경우 최대 1%의 추가 보험료를 징수하는 법안도 이때 나왔다.

메르켈 총리의 개혁도 풍랑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해 9월 독일연방 정부가 실업급여에 들어 있던 담배와 술을 빼고 물값 2.99유로를 넣자 100유로 증액을 요구하던 노조는 “정치적 속임수”라며 맹비난했다. 이에 앞서 2009년 메르켈 총리는 총선에서 지지율 하락으로 벼랑끝에 몰리기도 했지만 사회 안정을 바라는 표가 결집되면서 기사회생했다.

독일 정치인들은 좌·우파를 막론하고 정치적 생명을 걸고 복지제도 개혁에 매진했다. 그 결과 독일의 공공연금은 199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0%에 이른 데 이어 지금까지 11%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복지제도는 재정 불안 없이 성장의 과실을 충실히 분배하고 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