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한반도정책]<2>美 강경파 당국자의 직격탄

  • 입력 2004년 1월 2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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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발이 날리던 지난해 12월 초순의 어느 날 오후. 워싱턴DC 중심에 자리 잡은 행정부 청사를 찾은 기자는 테러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미국의 오늘’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뷰 며칠 전부터 생년월일과 여권번호를 제출하고 신분확인 절차를 거쳤지만 다시 서너 차례의 검문검색을 거쳐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건물 내 약속 장소까지 동행할 직원이 내려올 때까지 방문객들은 무작정 로비에서 대기해야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런 절차를 거치느라 길게 늘어선 대기자들의 줄로 북적대고 있었다.

20여분 후, 마침내 북핵 문제에 깊이 관여하며 스스로를 ‘우익매파(right wing hawk)’라고 말하는 당국자와 마주앉았다. 익명을 전제로 한 ‘백그라운드 브리핑’ 자리였기 때문인지 그는 “북한이 핵을 제3국에 수출할 경우 미국은 군사적 조치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다”며 언성을 높이는 등 평소의 생각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빌 클린턴 행정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떤 차이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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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우리가 핵, 생화학 무기, 비확산 정책, 그리고 인권 문제 등을 한꺼번에 그리고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클린턴 행정부는 한 가지씩 차례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의 방식은 이미 실패했다.”

―부시 행정부가 ‘선’을 그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북한의 핵 개발을 방관하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레드라인(red line·한계선)을 이야기하면 그것은 곧 군사적 조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최근 ‘목표점(북한의 핵 완전포기)을 향한 진전이 있는 한 북핵 6자회담은 계속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가장 적절한 현재 우리의 입장이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머뭇거렸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미국은 ‘레드라인’의 정확한 뜻을 밝히길 꺼린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레드라인은 핵 재처리를 의미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어겼고 클린턴 행정부는 아무런 (군사)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말을 해놓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미국에 대한 신뢰와 위상은 떨어질 것이다. 다만 분명한 레드라인은 북한이 핵무기를 제3국에 수출하는 것이다.”

―6자회담이 다음 일정도 마련하지 못한 채 해를 넘겼는데….

“1월 중순이든 2월 초순이든 2차 회담은 분명 열릴 것이다. 결실을 이룰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곧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북한이 2차 회담에 임하겠다고 해놓고 협상을 지연시키는 것에 대해 나는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을 통해 진짜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앞으로 대북 강공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종의 수순 밟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거리낌없이 “둘 다(both)”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6자회담은 아직도 최선의 방법이다. 그 ‘끝’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일 북한이 결국 핵을 포기하지 않고 6자회담이 결렬돼 미국이 북한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거나 다른 강경책을 쓰는 상황이 되더라도 미국은 특히 중국과 러시아에 보다 많은 신뢰를 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강경책이라 하더라도 군사조치는 고려대상이 아닐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거듭 “왜 아니냐(why is that)”고 되물었다. 차분했던 그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왜, 누가 그런 말을 하나? 유감이다. 그렇게 말하는 대신 군사적 대응은 상당한 희생이 따를 것이며 따라서 현재로서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나 핵 물질을 수출하기 시작하면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감행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는 이런 미국의 결정에 찬성할 것이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가 더 많은 희생을 막는 방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북한이 우리에게 자기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한국의 일부 지역을 제한 공격(limited attack)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시나리오를 준비해 놓고 그에 따른 비상대책(contingency plan)을 갖고 있다. 당장 실행에 옮긴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과는 너무 거리가 있다.

“정확한 단어 하나하나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노 대통령은 선거캠페인 기간과 임기 초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반도 내 평화를 정착시키겠다’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치르면 한국은 참전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도움이 되지 않은 발언들이었다. 우리는 한국과 안보동맹을 맺은 국가다. 그런 발언들은 곤란하다.”

―대북관에 있어 한미간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북한을 국제적 위협으로 보지만 한국은 지역적 문제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핵무기를 살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까지 걱정해야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청와대 외교안보팀에 대한 워싱턴의 평가가 부정적이라고 하던데….

“나종일(羅鍾一) 국가안보보좌관, 반기문(潘基文) 외교보좌관과 젊은 보좌진은 다르다. 두 사람은 이상주의적이지만 우리는 한미간 차이점에 대해 스스럼없이 대화한다(여기서 그는 두 사람을 ‘스트레이트 슈터스(straight shooters·정직, 공정한 사람)’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한국 외교부 당국자들이 청와대 내 젊은 보좌진을 가리켜 ‘탈레반’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청와대와 외교부간의 불협화음이 문제인 것 같다.”워싱턴=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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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니-볼턴 재직했던 네오콘 요새▼


‘백악관의 별관’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요새’.

워싱턴에서는 미국 기업연구소(AEI)를 이렇게 부른다. AEI가 미 행정부 요직에 포진한 신보수주의 성향의 ‘AEI 출신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정책결정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지난해 11월 경북 경주시에서 한미동맹을 주제로 열린 비공개 포럼장.

한국 외교안보연구원이 AEI 연구원들과 함께 마련한 이 자리에 참석했던 심윤조(沈允肇) 전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은 AEI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토로했다.

“발표 후 이어진 토론에서 AEI 사람들은 ‘한미동맹에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더군요. 한반도 정세에 대한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마치 행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싱크탱크 연구원들이 권위자인 양 ‘폼’만 잡는다며 ‘K가의 펀디트들’(K street pundits·싱크탱크 연구소들은 대부분 워싱턴의 K가에 밀집해 있음)이라고 격하해 온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AEI만큼은 인정한다는 후문이다.

심 전 국장은 “학계나 민간 쪽 의견을 듣지 않는 부시 대통령도 AEI쪽 의견은 경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AEI는 실제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은 중장기적 연구, 부시 행정부 주요 정책의 ‘블루 프린트’를 제공해 온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부시 행정부의 감세안이나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구상 등이 대표적인 사례. 감세안은 전 백악관 경제보좌관인 로런스 린지가 연구원으로 있을 때 만든 것이고 미군 재배치는 딕 체니 부통령이 AEI 국방특별위원회를 이끌며 연구했던 내용과 유사하다.

AEI는 국가간 민감한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비공식 외교의 장’을 주선하는 역할에도 적극적이다.

한반도를 담당하는 닉 에버스타트는 “한미 외교 관리들이 시기나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공식적으로 만나기 어려울 경우 우리가 비공식적인 저녁모임이나 세미나 등을 통해 만남의 자리를 제공해 왔다”고 밝혔다.

외교안보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AEI는 지난 수년간 비공식회의 참석차 워싱턴을 방문할 때마다 가장 자주 방문할 만큼 우리에게는 워싱턴 싱크탱크 중 최우선 순위에 있는 연구소”라며 “문제는 이런 창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청와대에 있다”고 주장했다.

AEI 출신 요직인사로는 역대 미국 부통령 중 가장 실세라는 체니 부통령과 존 볼턴 국무부 차관을 꼽을 수 있다. 체니 부통령은 이 연구소 이사로 재직했고, 그의 아내 린 체니는 현재 교육 문화 사회담당 상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또 볼턴 차관도 이 연구소 수석부소장을 지냈다. 리처드 펄 전 국방정책 자문위원장은 상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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