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첩하게 유연하게” GS의 소프트파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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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를 이끄는 사람들]GS그룹

허창수 회장
허창수 회장
“쇼트트랙 계주는 4명의 선수가 출전해 횟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교대할 수 있기 때문에 선수 개인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치밀한 작전과 팀워크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지난달 초 계열사 신임 임원과 가진 만찬에서 강조한 말이다.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민첩한(agile) 조직을 만들 수 있게 신임 임원들이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와 팀워크를 이끌어 달라는 당부였다.

요즘 GS그룹이 강조하는 키워드는 ‘민첩’과 ‘유연’이다. ‘인화’와 ‘화합’ ‘내실’을 중시하던 기존 경영 철학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재계에서는 원화 강세, 보호무역주의 확산, 북핵 문제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등 국내외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GS그룹이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민첩하고도 유연한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표출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사’지만 ‘승부사’

허창수 회장은 재계 안팎에서 ‘재계의 신사’ 또는 ‘영국 신사’로 통한다. 선한 인상에다 소탈하고 온화한 성품 덕분이다. 좀처럼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고 최대한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생활 태도도 이런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 자산 규모 기준 국내 재계 7위인 GS그룹을 이끄는 오너 경영인이지만 권위를 앞세우지 않는다. 회장 집무실에서 가까운 서울 강남권에서 지인을 만날 약속이 있으면 지하철을 타고 갈 정도. 비서팀도 따로 두지 않는다.

하지만 사업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는 GS그룹 임직원들에게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결코 앞서 나갈 수 없다”며 도전과 혁신을 강조한다.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 때는 ‘승부사 기질’을 드러낸다. GS칼텍스가 전남 여수에 2조 원을 투자해 연산 120만 t 규모 석유화학 설비를 짓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계에서는 허 회장의 이런 모습들에 대해 LG그룹을 공동 경영하던 시절 다양한 계열사를 거치며 풍부한 실무 경험을 쌓아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당시 경기 침체 국면을 여러 차례 극복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교훈을 체득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첨단 정보기술(IT) 기기가 나오면 곧바로 구입해 사용하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인 허 회장의 개인적 취향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허 회장은 현장도 중시한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노력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GS칼텍스, GS리테일, GS샵, GS건설 등 주요 계열사들의 생산, 판매 건설 현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력과 경험을 겸비한 오너 경영진

허 회장의 둘째 동생인 허진수 GS칼텍스 회장은 1986년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재무과에 입사한 후 정유영업, 생산, 석유화학, 경영지원 분야를 두루 거친 에너지 전문가. 1998년 LG 중국지역본부 전무와 2000년 LG전자 중국지주회사 부사장으로 잠시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는 직장 생활 대부분을 GS칼텍스에서 보냈다. 2013년 GS칼텍스 대표이사 취임 후 설비 효율성 강화와 경제성 있는 신규 원유 도입, 전사적 차원의 개선 활동인 ‘V-Project’ 등을 통해 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강화시켰다. 그 덕분에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순이익(1조4381억 원)을 냈다. 평소 소탈한 성격에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허 회장의 셋째 동생인 허명수 GS건설 부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GS건설이 재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부회장으로서 강한 조직이 최우선이라는 경영 방침을 세우고 ‘변화’ ‘최고’ ‘신뢰’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핵심가치로 내세운 뒤 경영 위기를 극복했다. 이에 따라 GS건설은 2012년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평가에서 슈퍼섹터 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은 허 회장의 넷째 동생이다. 외국계 은행과 럭키증권(현 NH투자증권) 등 금융권에 있다가 2002년 LG홈쇼핑(현 GS홈쇼핑) 전략기획부문 상무로 유통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2007년 GS홈쇼핑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고 중국, 인도 등 해외 7개국에서 홈쇼핑 합작 사업을 벌이면서 연간 해외 취급액 규모를 1조 원 이상으로 키우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또 2011년부터 국내외 380여 개 스타트업 기업에 2700억 원을 직간접으로 투자하며 미래 사업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전문가’로 이뤄진 ‘전문 경영인’

하영봉 GS에너지 부회장은 LG상사 사장을 지낸 정통 ‘종합상사맨’이다. 종합상사에서의 오랜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자원 개발 사업에 일가견이 있다. 지난해에는 매장량 1억4000만 t 규모인 인도네시아 BSSR 석탄광 지분을 인수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2014년 GS그룹이 인수한 GS E&R(당시 STX에너지)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정택근 ㈜GS 부회장은 LG상사 재경팀장(상무), LG유통(현 GS리테일)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재무 전문가. 2015년 그룹 지주회사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허 회장이 강조한 ‘기존 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 확충’을 통한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GS글로벌 대표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손영기 GS E&R 부회장은 발전사업 전문가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GS칼텍스에서 가스, 전력, 자원개발사업을 총괄했다. 2008년부터는 GS파워 대표이사 사장으로 경기 안양과 부천 열병합발전소 운영을 주도했다.
 

▼그룹 계열사 이끄는 최고경영진▼

법률가-엔지니어-재무통 등 9인의 ‘차세대 리더’


GS그룹은 매월 한 차례 사장단 회의를 갖는다. 그룹 총수인 허창수 회장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 16명(부회장 이상 7명, 사장 9명)이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는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계열사별 경영 이슈 공유와 국내외 경제 경영환경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 2011년부터는 연간 12차례 열리는 사장단 회의 가운데 하나를 해외에서 3박 4일 일정으로 열고 있다. 중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주목받는 해외 시장에 대한 현지화 전략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는 최고경영자 가운데 사장 9명은 부회장 이상 고위 인사들과 호흡을 맞추며 GS그룹의 미래 성장을 이끌 ‘차세대 리더’로 꼽힌다.

○ 현장 경험 많은 베테랑

GS건설 대표이사인 임병용 사장은 검사 출신 경영인이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삼일회계법인과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91년 LG그룹 사내변호사로 합류한 뒤 LG텔레콤 마케팅 초대실장 등을 지냈다. GS그룹에서는 ㈜GS 경영지원팀장(사장)과 GS스포츠 대표를 지냈다. 2013년 GS건설 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재무구조 개선과 중동에 집중됐던 해외 건설사업장의 다변화 등을 통해 회사 경쟁력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연수 GS리테일 사장은 허창수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허연수 사장의 부친인 고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이 허창수 회장의 숙부다. 허연수 사장은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전자계산학 석사를 받은 이공계 출신 경영자다. GS리테일에서는 주력 사업인 편의점 사업부 대표 역할을 수행하다가 2016년 대표이사가 됐다. GS25, GS수퍼마켓 등 전국에 걸쳐 구축된 오프라인 인프라와 새로운 온라인 사업의 시너지를 통한 고객 라이프스타일의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데 관심이 많다.

김응식 GS파워 사장은 화학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보유한 엔지니어 출신. 1985년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에 입사한 후 원유제품 부문장(상무), 싱가포르 현지법인장(전무), 윤활유사업본부장(부사장)을 지냈다. 정유업계에서는 원유 및 제품 수급 전문가로 통한다. 2016년 GS파워 대표로 부임한 후 세계 최고 수준의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육성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홍순기 ㈜GS 사장은 GS그룹의 안방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재무통. 2010년부터 지주회사인 ㈜GS 재무팀장(CFO)으로 자회사 이슈와 경영 실적 분석 등을 담당하고 있다. GS EPS 관리부문장(상무)도 지냈다.

○ ‘신인왕’을 노리는 신임 사장들

GS EPS를 이끄는 허용수 사장은 허창수 회장의 숙부인 고 허완구 ㈜승산 회장이 부친이다. 허 사장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인 크레디스위스은행에 근무하다가 2007년 ㈜GS 사업지원담당 상무로 입사했다. GS에너지 에너지/자원사업본부장(부사장)을 거쳐 지난해 GS EPS 대표이사가 됐다. 금융, 물류, M&A, 발전사업, 자원개발 등 다양한 업무를 거치며 체득한 경험과 전문성이 장점이다. 지난해 7월 GS EPS 액화천연가스(LNG) 복합 4호기를 성공적으로 준공시킨 데 이어 LNG 직도입을 성사시켜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세홍 GS글로벌 사장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이다. GS그룹의 대표적인 4세 경영인이다. IBM과 셰브론 등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GS칼텍스에 입사해 싱가포르 법인장, 생산기획공장장, 석유화학 및 윤활유사업본부장을 지냈다. 지난해 평택·당진항 배후단지 조성사업 시행자 선정 등 다양한 신규 사업 개발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엄태진 GS스포츠 사장은 재무 전문가다. 1983년 호남정유 입사 이후 34년간 회계, 세무 등을 거치며 재무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2011년 말부터 GS칼텍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내다가 지난해 말 GS스포츠 사장으로 선임됐다. 원칙에 따른 합리성을 갖춘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정찬수 ㈜GS 사장은 1987년 호남정유 입사 이후 재무, 경영기획, 정유 영업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아본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2013년 ㈜GS 경영지원팀장(전무)을 맡아 GS그룹의 안정적인 수익성 확보와 지속적인 미래 성장 기반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김형국 GS칼텍스 사장은 화학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 1987년 호남정유 입사 이후 20여 년간 경영기획 및 신사업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2007년 GS파워 마케팅부문장으로 이동해 1년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곤 GS칼텍스에서 일했다. 2008년 임원(상무)으로 선임된 지 10년 만에 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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