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러시아 화웨이 vs 미국 애플…FT ‘기술냉전 시대 본격화’ 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4일 2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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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애플’을 사용하면, 워싱턴에서 당신의 전화를 (몰래) 들을 수 있다. ‘화웨이’를 이용하면 베이징에서 당신 전화를 들을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게 더 낫겠나?”

최근 러시아 정부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야기다. 러시아의 선택은 ‘후자’다. 러시아와 중국 네트워크 장비업체 화웨이 간 협력관계가 나날이 강화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니다. 미국이 유럽 국가들과 손을 잡고 화웨이를 견제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화웨이 간 밀월관계가 구축되면서 과거 동서 냉전시대처럼 ‘기술 냉전’(Tech Cold War) 시대가 본격화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4일 보도했다.

화웨이는 미국의 견제로 시장이 위축되자 러시아와 급속히 가까운 관계를 만들고 있다. 화웨이는 러시아 최대 통신업체 ‘모바일텔레시스템즈’(MTS)와 협력해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를 내년까지 러시아 전역에 설치할 계획이다. 두 회사는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첫 5G 테스트 작업을 시작했다. 화웨이는 향후 6년간 러시아에 연구개발(R&D) 인력을 3배로 증원하고, 러시아에 신규 연구개발센터를 3개 건립하기로 약속했다. 나아가 러시아 대학, 연구기관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연구비 지원은 물론 정보기술(IT) 교류도 확대 중이다.

러시아도 화웨이의 이 같은 행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미국은 5월 “화웨이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수출규제 명단에 올렸다. 화웨이 장비에 기밀을 빼돌릴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탓이다. 폴란드가 9월 미국에 협력 의사를 밝히는 등 화웨이의 5G 서비스 제외에 동참하는 국가들도 늘고 있다.

러시아는 화웨이 편에 섰다. 양측 간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러시아는 경제가 악화되면서 외국인 투자를 늘리는 한편 자국 내 IT기술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화웨이 기술 이전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안보 차원에서도 러시아 정부는 통신기술 교류시 미국 기업보다는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의 기업이 자국 내 주요 데이터에 접근하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 총회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 때문에 전 세계는 끊임없는 갈등에 내몰고 있다. 러시아는 민주적 경제관계를 지지한다”며 중국을 옹호하고 나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우리는 러시아를 이웃이자 포괄적 협력파트너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을 위한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본다”고 화답했다

화웨이 역시 미국 견제로 위축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러시아가 필요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화웨이의 올해 3분기 시장 점유율은 18.2%로, 삼성전자(21%)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미국 제재 논란으로 북미와 서유럽 시장에서 성장이 멈춘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또 구글이 자사 운영체계(OS) 안드로이드를 화웨이폰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향후 새로운 OS개발 등을 위해 더 많은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가 필요한 상황이다. FT는 “화웨이는 현지에서 우수한 러시아 IT인재를 적극 고용하고 있다”며 “화웨이가 러시아 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계속하면서 러시아에 있는 미국 IT기업은 사라져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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