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달걀·휴지 총출동”…파라과이 이색 反부패시위

  • 뉴스1
  • 입력 2019년 4월 23일 14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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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로 더러움 닦고 날달걀 냄새로 오늘 떠올려라”
퇴진운동 대상 됐던 의원 사임 이끌어내

냄비·프라이팬·달걀·휴지 등 ‘가정 생필품’이 총출동한 이색적인 반(反)부패 시위가 파라과이에서 열리고 있다. 부패한 자국 정치인의 퇴진을 촉구하는 파라과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다.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파라과이 아순시온발 기사에서 지난 19일 시위대가 가지고 나온 각종 생필품에는 의미심장한 사연이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이 시위대의 첫 표적은 호세 마리아 이바녜스 전 상원의원이었다. 이바녜스 전 의원은 자신의 사유지에서 일하는 직원 3명의 월급을 공금으로 충당했다. 그는 혐의를 인정하고도 면직당하지 않아 뭇매를 맞은 인물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이바녜스는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들겼다. 이들은 이바녜스 전 의원의 집을 두루마리 휴지로 휘감았다. 이내 날계란 세례를 퍼부었다.

반부패 시위를 주도하는 형사 전문 변호사 마리아 에스테르 로아는 “휴지를 가져온 이유는 (더러움을) 씻으라는 뜻”이라면서 “날계란을 던진 건 며칠동안 역겨운 냄새를 맡으면서 오늘 시위를 떠올리라는 의미”라고 NYT 인터뷰에서 밝혔다.

결국 이바녜스 전 의원은 사임했다.

이런 반부패 시위는 근 7개월동안 계속돼 왔다고 로아 변호사는 말했다. 이들이 퇴진 요구 대상은 꼭 특정 성향의 정치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주지사나 연방의회 의원, 지방 관리들 중 비위 사실이 드러났지만 처벌받지 않은 이들은 누구든 표적이 될 수 있다.

로아 변호사는 “한 사람이 부패하는 걸 막아설 순 없지만,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게 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반부패 시위 장면을 담은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상에 퍼지자, 이들의 표적이 된 정치인들은 급속도로 민심을 잃었다. 급기야 고급 식당에서 출입을 거부당했다. 이들의 배우자들도 뷰티 살롱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게 됐다.

시위 참가자들 중에선 교육 지원금을 삭감한 정치권에 분노를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40대 여성 시위자인 펠리시타 카바나스는 “딸이 다니는 학교가 자원 부족에 시달리자 거리로 나왔다”면서 “학교에 지원되던 (정부) 기금이 줄면서 음식이나 시설 같은 기본적인 것에 투자가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대편에서는 시위대가 폭력적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바녜스 전 의원은 로아 변호사를 비롯한 활동가들을 “사유재산 파괴를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는 선동가들”로 치부하면서 “이들은 끔찍한 공격과 모욕을 자행하고 돌을 던지면서 개인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이들의 목소리는 언론을 통해 더 증폭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부 시위 참가자가 비판 대상의 사유 재산에 해를 입히는 경우는 있지만 시위대 또한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로아 변호사는 반박했다. 지난해 말에는 누군가가 활동가를 실어나르던 차량에 불을 지르는 일도 있었다. 일부 활동가들은 살해 위협을 무릅쓰고 시위에 나서기도 한다.

로아 변호사는 NYT 인터뷰에서 “일부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는 건 우리에게도 걱정거리”라면서 “그런 폭력은 사회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그는 반부패 운동을 계속 밀어붙일 생각이다. 핵심 정부기관들의 지지를 얻어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감독하고 책임을 강화하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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