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보호무역 맞서 뿌리부터 바꾸는 日기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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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들이 생존을 위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발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본 기업들의 매출이 감소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소형 모터 분야의 글로벌 강자인 일본전산이 대표적이다. 미중 간 무역 갈등으로 인해 일본전산이 중국 기업들로부터 수주하는 물량이 급감했다. 급기야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 일본전산 회장은 그간 승승장구해 왔던 회사 매출(2019년 3월 회계연도)이 6년 만에 줄어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직접 내놓았을 정도다.

스마트폰에 대량으로 사용되는 세라믹 콘덴서를 생산하는 무라타제작소의 상황도 비슷하다. 애플 등 미국계 기업의 중국 수출이 감소하면서,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무라타제작소 역시 타격을 입게 됐다.

보호무역주의 리스크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은 생산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들은 중국에서 생산해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던 기존 글로벌 분업생산 체제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전산의 경우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자동차 및 가전용 부품 일부를 멕시코 공장으로 이관할 계획이다. 투자 규모만 약 200억 엔(약 2066억 원)에 달한다.

물론 일본전산이 중국을 완전히 떠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가모리 회장은 중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전기자동차(EV)의 구동용 모터 생산체제를 확충하고 자동차 전자제어장치(ECU) 공장을 신설하는 등 중국 내수 시장을 겨냥한 투자를 계속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객 수요가 있는 곳에서 현지 생산하겠다는 기본 원칙인 ‘지산지소(地産地消)’ 전략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뜻이다.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경영환경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일본 기업의 움직임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들은 환율, 금리, 원자재 가격 등이 급등락할 경우를 대비해 강하고 안정적인 기업 체질을 구축해 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비즈니스 모델 안정화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일본 기업들 사이에 구독(subscription) 비즈니스 모델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다. 고객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요금을 받는 구독 비즈니스 모델은 고객과의 유대가 상대적으로 강하고 안정적이며, 제조업의 서비스화에도 효과적인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가령, 건설기계 업체 고마쓰는 기계(제품) 판매에만 집중하던 비즈니스 모델에서 탈피해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영역을 확대했다. 구체적으로, 고객사에 기본적인 보수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정상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며 기계를 운전하는 방법을 개선시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안도 알려주고 있다.

이 밖에 일본 기업들은 주주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자사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주주를 우대하는 제도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일본 기업 중 주주에게 자사 제품 제공 등의 우대 조치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의 비중은 38.5%(1450개 사)로 전년 대비 82개가 늘었다. 또한 주식을 장기 보유하고 있는 주주를 우대하는 기업은 92개가 늘어난 407개였다. 간장 제조업체 기코만은 지난해부터 1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주를 대상으로 보유 주식 수에 따라 차등해 선물을 증정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세계 경제 흐름이 됐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일본 기업의 상황이 남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불리한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외적으론 현지 시장을 지키기 위해 해외 생산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대내적으로는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 체질 개선에 힘쓰는 일본 기업들을 참고해 볼 만하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 jplee@lgeri.com 정리=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일본 기업#보호무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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