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갑식]‘바보 김수환’ 추기경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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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청년회 모임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어요. 청년들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수환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수환이가 누구냐고 다시 물으니까 그제야 ‘나 김수환이야’라고 해서 청년들이 다들 놀랐지요.” 얼마 전 서울대교구 구요비 주교가 회고한 김수환 추기경의 겸손과 눈높이 소통법의 일화다. 최근 방송 중인 추모 라디오 드라마 ‘바보 김수환’에서 김 추기경 역을 맡은 탤런트 최재원은 책과 자료를 통해 연구하다 ‘내가 과연 하늘나라 천당에 갈 수 있을까’라는 그의 겸손한 고민에 놀랐다고 한다.

▷16일로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의 선종(善終·별세를 의미하는 가톨릭 용어) 10주기를 맞는다. 10년 전 서울 명동대성당 주변은 40만 명의 추모 인파가 몰린 ‘명동의 기적’으로 뜨거웠다. 서울대교구 중심으로 장례가 치러졌지만 국장(國葬) 아닌 국장이었다. 유신과 군사정권 치하 인권의 보루이자 민주화운동의 산파였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갈등과 대립으로 갈라진 사회에서 통합의 상징이자 누구든지 보듬어 줬던 큰 어른의 부재가 그만큼 아팠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집단 기억에서 그는 여전히 바보 추기경 또는 이 시대의 마지막 어른이다. 모든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어른이 없다는 푸념 끝에 그는 어김없이 소환된다. 추기경을 곁에서 지켜본 이들은 김수환 정신을 한마디로 신앙에 입각한 교회와 사회에서의 인간 존중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고, 하느님 모습대로 창조된 가장 존엄한 인간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1860년 프랑스 앙투안 슈브리에 신부가 설립한 프라도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청빈한 생활과 함께 노동과 영성을 추구하는 사제들의 모임이다. 이 사제회는 국내에서는 김 추기경의 도움으로 1975년 출발했다. 프라도회의 정신 중 하나가 ‘사제는 먹히는 존재’라는 가르침, 프랑스어로 ‘옴 망제(homme mang´e)’다. 김수환 정신의 부활의 신비에는 이 가르침에 누구보다 충실했던 바보에 대한 그리움이 깔려 있다. 그런 어른을 찾아보기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이어서인지 더더욱 그립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dunanworld@donga.com
#김수환 추기경#선종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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