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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의 30박자로… 오선지에 내려앉은 국악 正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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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의 30박자로… 오선지에 내려앉은 국악 正歌

임희윤 기자 입력 2019-11-08 03:00수정 2019-11-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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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록과 국악의 파격 앨범 ‘지뢰’ 낸 여창가객 강권순-송홍섭씨
정가의 악보화 시행착오 끝 성공… 해외 재즈그룹도 언제든 연주 가능
“이 음반은 마침표이면서 물음표… 정가 실험은 그침없이 계속될 것”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지난달 31일 만난 베이시스트 겸 프로듀서 송홍섭 씨와 여창가객 강권순 씨. 두 사람은 “수십 년간 각자 오만 가지 실험 음악을 해봤지만 이번 앨범만큼 어렵지는 않았다”며 한숨과 웃음을 쏟아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앨범 ‘지뢰: Sounds of the Earth’ 표지.
파격은 쉽지만 혁명은 어렵다. 단군 이래 등장한 수많은 국악 퓨전 음악 중에서도 유별나게 괴괴하고 모난 돌이 8일 세상에 나왔다. 강권순×송홍섭 앙상블의 앨범 ‘지뢰(地(뇌,뢰)): Sounds of the Earth’다.

최근 만난 여창가객 강권순 씨(50·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이수자)와 베이시스트 송홍섭 씨(65)는 “국악계 원로들에게 혼쭐이 날까 봐 음반 나오기 전부터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웃었다. ‘지뢰’는 올해 한국 음악계 최고의 문제작이다. 뜻밖의 리듬과 정서가 지뢰(地雷)처럼 매설돼 있다. ‘수양산가’ ‘길군악’ 등 우리 고유 정가(正歌)의 등뼈를 칡넝쿨처럼 휘감는 베이스기타, 드럼, 피아노, 신시사이저 연주가 절경이다.

핵심은 리듬과 박자. 대체로 느리고 호흡이 긴 정가는 듣기에는 담백하지만 박자 세기가 고약하다. 가창자의 호흡에 따라 박자 체계가 4차원 공간처럼 휘어져서다.


2016년 송 씨는 “정가를 대중음악의 틀에 넣어보고 싶다”는 강 씨의 의뢰를 받고 정간보를 파고들었다. 강 씨가 녹음해준 노래도 수없이 반복 재생했다. 긴 호흡에 내재한 리듬과 그루브를 인디애나 존스처럼 발굴해야 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부터 ‘삐삐밴드’의 프로듀서까지 맡았던 송 씨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자 지난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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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섭 씨가 직접 그린 ‘편수대엽’의 오선보. 4분의 30박자다. 송홍섭 씨 제공
“여러 리듬 꾸러미를 만들어 노래에 얹는 시행착오를 숱하게 반복했죠. ‘계면조 편수대엽’은 4분의 30박자로 맞췄어요. ‘우조 이수대엽’은 8분의 48박자가 됐고요.”(송홍섭)

송 씨의 오선보를 통해 이제 정가는 기록됐다. 머나먼 북유럽의 재즈 그룹이 와도 구전심수(口傳心授) 없이 악보만으로 소리꾼과 즉각 교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강 씨는 “평균율에서 벗어나는 음까지 곧잘 사용하니 서양음악 관점에서 보면 저는 음치이자 박치”라며 “이번 작업을 위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서양식 박자를 셌다”고 했다.

영국 밴드 ‘킹 크림슨’이나 미국 그룹 ‘리턴 투 포에버’를 연상시키는 이 난해한 앨범은 라이브 녹음이다. 7월 23일 송 씨가 운영하는 경기 가평뮤직빌리지에서 한 방에 끝낸 공연 겸 녹음. 실황음반임을 믿기 힘들 정도로 합이 정교하다. 서수진(드럼), 남메아리, 박은선(이상 건반)의 젊은 ‘재즈 드림팀’도 강 씨의 절창을 받쳐냈다.

‘우조 이수대엽’에는 21세기 해학도 담았다.

“노래 속 여인은 베를 짜며 수백 년째 남자만 기다렸습니다. 고구마 삼킨 듯한 답답함을 수동적 한이 아닌 욕설로 풀어냈죠.”(강권순)

오른쪽 스피커에서 나는 작은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구십팔, 삼육십팔, 육삼십팔….”

두 사람은 “이번 음반이 3년간의 마침표지만, 작은 느낌표이자 커다란 물음표”라고 했다.

“2004년 제 앨범 ‘천뢰(天(뇌,뢰))’가 하늘에서 내린 소리 그대로의 정가를 담았다면 이번엔 땅에서 되받는 울림(지뢰)을 만들어 냈죠. 완성판인 ‘인뢰(人(뇌,뢰))’가 나올 때까지 이 실험은 현재진행형입니다.”(강권순)

‘지뢰’는 14일 CD와 LP로 발매된다. 9, 10일 옛 서울역에서 열리는 서울레코드페어에서도 구할 수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편수대엽#서울레코드페어#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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