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민주주의 위협하는 러시아發 신권위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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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민주주의가 온다/티머시 스나이더 지음·유강은 옮김/455쪽·2만 원·부키

냉전시대가 종식되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민주주의가 이데올로기의 승자로 등극하는 듯했다. 물고 뜯던 세계는 비로소 평온하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곳곳에서 불안한 신호가 감지됐다. 불평등 확산, 경제 성장 둔화,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낙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역사가 뒷걸음치는 건 신권위주의에 발목을 잡힌 탓이라고 분석한다. 러시아의 정치사회사를 추적하며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권위주의가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과정을 분석한다.

시발점은 러시아 신흥재벌 올리가르히와 블라디미르 푸틴의 결합이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는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했다. 정치 체제가 부재한 가운데 구소련의 국가 자산을 차지한 올리가르히는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 구소련 정보기관 출신인 푸틴은 이들이 체제를 지켜줄 인물로 고른 전략적 인물이었다.

책은 파시즘 철학자 이반 일린의 사상사를 꼼꼼하게 훑는다. 푸틴이 체제 기틀을 다지기 위해 일린의 사상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일린은 도덕과 신앙심에 근거해 개인이 법에 대한 양심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일린의 기독교 전체주의에 기대, 집권 기틀을 다졌다.

기반을 다진 푸틴은 장기 집권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사이버전을 벌인다.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말레이시아 민항기를 격추시키고선 딱 잡아떼고, 우크라이나 네오나치가 어린이를 십자가형으로 죽였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러시아의 무자비하고 치밀한 사이버전 덕분에 당선됐다고 본다. “러시아인은 자신들이 창조한 (허구의) 생명체를 미국 대통령 자리까지 끌어올렸다. 트럼프는 혼돈과 약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된 사이버 무기의 탄두였고 실제로도 그런 역할을 했다.”

집필 의도에 대해 저자는 “사실 자체가 의문시되는 시대에 당대의 세계사에서 상호 연결된 사건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권위주의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탐사 저널리즘에도 힘을 싣는다. “불평등이 고조됨에 따라 정치적 허구가 더욱 강화되는 우리 시대에 탐사 저널리즘은 소중해진다. 저널리즘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와중에 용감한 기자들이 위험한 현장에서 기사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티머시 스나이더#신권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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