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행복과 고통을 남긴 강렬한 첫사랑의 기억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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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줄리언 반스 지음·정영목 옮김/384쪽·1만5000원·다산책방

다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보자. 그 혹은 그녀에 대한 기억은 당신에게 행복으로 남아 있는가. 아니면 연애 과정이나 이별이 준 고통이 더 선명한가. 어쨌든 파국으로 치달은 사랑도 훗날 기억이 된다. ‘연애의 기억’은 행복이면서 고통스러운, 그런 사랑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소설은 노년에 접어든 폴이 50여 년 전 인생을 뒤흔든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꽤 파격적이다. 테니스클럽에 참가하게 된 19세 청년인 그는 49세 중년 여성 수전 매클라우드에게 빠져든다. 두 딸의 엄마인 수전은 그에게 영국 중산층의 가식을 함께 비웃을 수 있는, 세상에서 이야기가 가장 잘 통하는 특별한 사람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은 그에게 완벽한 재난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사랑의 흐름대로 시점도 달라진다.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한 연애 초반은 폴의 1인칭으로 서술된다. 하지만 각자의 가족을 떠나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부터 사랑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수전은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에 빠진다. 행복이 사라지는 자리에 파고드는 고통을 저자는 ‘너’로 폴을 지칭하며 덤덤하게 바라본다.

급기야 둘의 사랑은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돼버린다. 함께하지만 행복하기보다 고통으로 빠져드는 수전을 지켜보며, 폴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행복과 고통 사이를 진동하는 섬세한 감정의 서술이 매력적이다.

“그의 공책에는 이런 내용도 적혀 있었다. ‘한 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보다는 사랑하고 잃어본 것이 낫다.’ 그것은 그렇게 그 자리에 몇 년을 있었다. 그러다 그가 줄을 그어 지워버렸다.”

이 소설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10대 후반, 그는 50대 여인 라우리언 웨이드를 열렬히 사랑했고 2009년 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폴의 기억이 그래서 더 절절하고 황량한 걸까.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연애의 기억#줄리언 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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