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사건]“미안하다” 남긴채…코로나19로 세상 떠난 아버지의 슬픈 장례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0일 21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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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11일 숨진 고 정원균 씨(82)가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 영상의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8년경 한 환자의 CT 영상을 판독하고 있다. 유가족 제공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11일 숨진 고 정원균 씨(82)가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 영상의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8년경 한 환자의 CT 영상을 판독하고 있다. 유가족 제공
“지인 분들에게 ‘빈소가 차려졌으니 오시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안 나오더라고요. 부고도 어제 오후 늦게 서야 전했어요. 돌아가신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입이 안 떨어져서…. 장남으로서 죄송스럽죠.”

20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의 고 정원균 씨(82) 빈소를 지킨 장남(50)은 이렇게 말했다. 고인은 폐암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분당제생병원에서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같은 날 고양시 명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닷새 만인 11일 숨졌다. 고인을 곁에서 챙겼던 부인(74)도 코로나 19에 감염돼 치료를 받고 있다.

빈소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9일 만에 뒤늦게 마련됐다. 고인을 간호하다가 밀접 접촉자로 분류됐던 다른 가족의 자가 격리가 끝나는 일정에 맞춰 잡아뒀던 일정이지만 전날인 19일 남은 가족마저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더는 미룰 수가 없어 제사라도 한 번 올리려 장례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상복을 입은 고인의 장남 내외만이 빈소를 지켜야 했다.

고인은 고려대 의대를 나와 1967년 방사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이후 2017년 퇴직까지 50년 넘게 환자를 돌본 의사였다. 국군 맹호부대 소속 의무장교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이기도 했다. 성남 인하병원의 창립 멤버이자 마지막 병원장으로 대한영상의학 회장도 역임했다.

2003년부터 13년간 분당제생병원 영상의학과장을 지낸 고인은 지난해 10월경 이 병원에서 3기 폐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장남은 “아버지는 후배 의료진과 자신의 CT 영상을 함께 판독하며 치료 방향를 논의하실 정도로 의학에 대한 열정이 있으셨던 분”이라며 “누구보다 암 판독을 잘 알아셨던지라 자신의 병을 처음 판독하시면서는 서럽게 우셨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지내다 6일 귀국한 장남은 아버지가 숨지기 불과 2시간 전 방호복과 장갑, 고글 등을 착용한 채로 처음이자 마지막 면회를 했다. 영상 통화로 아버지를 다른 가족들과 연결해드렸는데, 이때 가족들이 아버지에게 전한 마지막 말은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였다. 아버지는 마지막 말을 남길 기력이 없었다. 다만 닷새 전 화상통화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미안하다”였다고 한다.

12일 화장식에도 직계가족 중에는 장남만 참석했다. 확진돼 치료를 받거나 자가 격리 중이던 고인의 부인 등 다른 가족들은 고인의 마지막을 사진과 동영상으로만 지켜봤다. 장례 역시 2일장으로 짧게 치러진다. 고인은 21일 발인을 거쳐 충북 괴산군의 국립괴산호국원에 봉안될 예정이다.

장남은 “가족 모두에게 ‘롤모델’이자 든든한 가장이셨던 아버지께서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이름도 없이 ‘코로나19 67번째 사망자’ ‘몇 번째 확진자’처럼 숫자로 불리신 게 못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이름이 아니라 숫자로 부르는 게 죄송스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확진자와 사망자를 숫자로 칭하는 건 참담할 당사자의 사정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으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유가족이 상실감과 ‘잘 보내드리지 못 했다’는 죄책감을 덜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했다.

한성희 기자 chef@donga.com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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