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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는 과연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까[동아 시론/주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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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는 과연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까[동아 시론/주동헌]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입력 2019-08-31 03:00수정 2019-08-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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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술 발달로 쏟아지는 암호화폐
지자체도 관련 분야 규제 풀기 나서… 하지만 경제 기능-안정성 의문 커져
신뢰 어렵고 유동성에도 도움 안 돼, 현란한 기술 홍수 속 본질 직시해야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좋은 시절 다 갔다. 교수들 얘기다. 옛날엔 논문도 안 쓰고 휴강도 마음대로 했단다. 일부 교수님 얘기겠지만, 나 대학 시절 전해 내려오던 전설을 생각해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경영학과 마케팅을 강의하던 한 교수님의 기말고사 시험 문제는 항상 조교가 칠판에 쓴 ‘마케팅이란 무엇인가?’였다. 그런데 어느 해는 조교가 들어와서 칠판에 문제를 쓰는데 ‘도’로 시작을 하더란다. 학생들은 요샛말로 ‘멘붕’이었을 게다. 그해의 시험 문제는 ‘도대체 마케팅이란 무엇인가?’였다. 그럼 화폐경제학에서는 기말고사 문제로 ‘화폐란 무엇인가’를 내는 것도 방법이겠다.

사실 마케팅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화폐, 그러니까 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몇몇 동료 교수가 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마케팅 전공 교수님이 “도대체 화폐가 뭐냐”고 물었다.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부산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형태로 지역화폐를 발행한다는 기사를 보고 던진 질문이었다. 질문과 함께 링크된 기사를 보니 질문이 나올 법했다. 많은 사업계획이 나열돼 있었지만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쉽게 알 수 없었다. 질문한 교수님의 요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블록체인 기술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다른 하나는 암호화폐 형태든 무엇이든 지역화폐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같은 톡방에 있던 경영정보시스템 전공 교수님이 답을 주었다. 두 번째 질문은 내가 답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화폐 공급이 늘어나면 경기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면 암호화폐나 지역화폐도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가. 우선 암호화폐나 지역화폐는 화폐가 아니다. 한국은행은 암호화폐를 암호자산이라고 부르며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다. 지역화폐는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상품권에 화폐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화폐는 교환의 매개, 회계의 척도, 가치 저장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통상적으로 화폐는 이 중 교환의 매개로서 정의된다. 그러면 정보기술(IT)의 발달로 활용이 용이해져 가는 암호화폐나 지역화폐가 화폐가 아닐 이유가 없다. 사실 197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힉스라는 경제학자는 이미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곧 화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한국은행이 암호화폐를 화폐로 인정하지 않고, 경제학자들이 지역화폐는 상품권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노벨 경제학상에 빛나는 경제학자가 틀리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화폐를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사람들이 기꺼이 사용하려고 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했다. 하라리는 경제활동 기록의 수단이라는 현대적 시각에서 화폐를 정의한 것이다. 이 정의는 ‘회계의 단위’라는 생소한 단어로 서술된 화폐의 기능을 쉬운 말로 풀어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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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단위라고 하면 미터(m)나 그램(g) 같은 길이나 무게 단위를 떠올린다. 비슷한 방식으로 화폐는 가치의 단위이다. 미터가 측정하는 길이나 그램이 측정하는 무게가 일정한 것처럼 화폐가 측정하는 가치도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의 설립 목적이 물가 안정인 이유다. 또 국가경제에서 화폐의 발행 주체를 일원화하고 다른 교환의 매개를 화폐로 인정하지 않을 필요성도 분명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 이외에 교환의 매개는 화폐라는 이름을 가졌어도 화폐가 아닌 것이다.

그럼 이제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암호화폐를 인정하면 경기가 활성화될까라는 질문에 답해보자. 교환의 매개, 즉 유동성이라는 의미에서 화폐가 많아지면 경기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유동성을 공급해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면 일본에는 ‘잃어버린 20년’도 없었을 것이고 한국 경제도 지금과 같은 침체에서 허우적댈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현대 경제에서는 유동성이 경제를 활성화시키기보다는 활성화된 경제가 유동성을 창출해 낸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새로운 기술로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경영정보시스템 전공 교수님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암호화폐 형태의 지역화폐에 대한 기사를 다시 읽어 본다. 현란한 기술과 경제학적 용어들이 뒤섞여 기술자도 모르고 경제학자도 모를 정책이 나열돼 있다. 사기당하기 십상이다.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암호화폐#블록체인#지역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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