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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김정은, ‘우린 절친’ 과시했지만…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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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김정은, ‘우린 절친’ 과시했지만…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신석호기자 입력 2019-07-01 14:00수정 2019-07-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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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판문점에서는 역사적인 순간들이 연출됐습니다. 사상 최초로 미국 현직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고 한국과 미국,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한 자리에 그것도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만났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정치적 이벤트에 비해 비핵화 협상의 실질적인 진전은 크지 않았습니다. 양측이 2, 3주 내에 실무협상을 재개한다고 합의한 것은 협상국면을 이어나가기 위한 절차적인 측면입니다. 양측이 하노이 회담에서 드러난 비핵화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커다란 인식 차이를 좁혔다는 어떠한 증거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양측이 어제 공개한 발언 외에 물밑에서 어떤 진전을 이루고 있는지 당장 알 수는 없습니다. 배석자가 없는 53분 동안의 북-미 3차 정상회담에서 비밀 거래가 없었다고 본다면, 이번 회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국내정치적 필요라는 관점에서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 측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에 대한 상대방의 실질적인 양보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두 정상이 하루 동안의 소통 결과 판문점에서의 역사적 만남을 연출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함께 걸어 나오고 있다. 3차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김 위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트럼프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문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판문점=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두 정상이 ‘토요일 연락, 일요일 만남’을 유독 강조한 것이 증거입니다. 김 위원장은 “어제 아침에 (트럼프) 대통령님께서 (만나자는) 그런 의향을 표시하신 것을 보고 나 역시 깜짝 놀랐다”며 “정식으로 오늘 여기서 만날 것을 제안하신 말씀을 (6월 29일) 오후 늦은 시간에야 알게 되었다”고 구체적으로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SNS로 메시지를 보냈을 때, 사실 이 자리가지 오시지 않았으면 내가 굉장히 좀 민망한 모습이 됐을 텐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화답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불렀는데 당신이(김정은 위원장이) 나왔으니 우린 정말 친한 친구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 간 관계에서 예고 없이 갑자기 불러도 만사 제쳐두고 나오는 사람을 진짜 친구로 쳐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저는 두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으며 모종의 교감을 했다고 보는 편입니다만, 어쨌든 형식적으로 두 정상은 ‘서로 갑자기 불러도 나오는 사이’라는 점을 세계와 자국 여론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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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상이 어제 이벤트로 얻은 국내정치적 이득은 상당합니다. 2020년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정상회담을 계기로 거의 모든 국가수반들과 만나 다양한 이슈를 관리(manage)하는 세계의 대통령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무역협상 재개를 합의한데 이어 김 위원장과 비핵화 협상을 재개한다는 성과를 보여준 것이지요. 미중 무역협상 재개로 글로벌 경제의 위기상황을 피했습니다. 한반도에 와서는 “내가 취임하기 전 한반도는 전쟁직전이었다”며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대비해 자신을 ‘평화의 수호자’로 포장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김 위원장도 판문점 행보 내내 즐거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출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평양에서 진행되어 온 정치적 논란을 어느 정도 불식하는 호재임에 분명합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3월 공개적으로 밝힌 대로 북한 내부에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고, 이 목소리는 하노이 회담 결렬로 더욱 커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회담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과 숙청설이 나도는 상황에 이뤄진 이번 회담은 하노이 회담 결렬이 끝이 아니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여전히 존중하고 있다는 점을 홍보하는데 대대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지역에 있는 자유의 집에서 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판문점=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그러나 국내정치를 염두에 둔 정치적 이벤트가 곧바로 국제정치 차원의 비핵화 협상의 진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회담 전에도, 올해 2월 하노이 회담 전에도 양측 실무자들 사이의 실무접촉이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비핵화 조치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지 못하고 최고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넘겼습니다. 특히 이번 실무회담에는 하노이 회담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북측 대표로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북핵문제 전문부서인 외무성 라인으로 1994년 제네바 협상과 2005년 9·19공동성명, 2012년 2·29합의가 이뤄지고 깨지는 과정을 지켜봤거나 담당했던 그야말로 베테랑들입니다. 미국으로선 더욱 어려운 상대를 마주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국제사회는 화려한 정치적 이벤트보다 하노이 회담을 결렬로 이끈 양측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변화하는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변 핵시설 해체만으로 국제사회의 제제에서 벗어나겠다는 북한, 핵과 미사일뿐만 아니라 모든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하라는 미국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금이라도 양보를 할 수 있을까요? 양국의 안보문제일 뿐아니라 한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쉽게 해법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속도가 갑자기 빨라질 것 같지도 습니다. 김 위원장이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유지하겠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속도가 아니라 바른 길로 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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