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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의 핫 피플] 성추문 휩싸인 ‘미국 방송계 트럼프’ 오라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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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의 핫 피플] 성추문 휩싸인 ‘미국 방송계 트럼프’ 오라일리

하정민 기자 입력 2017-04-06 09:30수정 2017-04-0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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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과 독설, 출연자 윽박지르기, 편파 진행 등으로 유명한 미 보수성향 스타 방송인 빌 오라일리(67)가 거듭된 성 추문으로 생애 최고 위기에 처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 그가 지난 15년 간 5건의 성희롱 소송 합의를 위해 1300만 달러(149억5000만 원)을 지급했고, 더 많은 여성이 성희롱 피해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미 언론은 그를 수십 명을 성희롱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몰락한 유명 흑인 코미디언 ‘빌 코스비’에 비유하고 있다.

1996년부터 21년째 폭스뉴스에서 정치 토크쇼 ‘오라일리 팩터’를 진행하는 그는 백인 중장년층의 애국심을 직설적으로 자극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성향이 비슷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더욱 각광받고 있다. 평일 오후 8시(동부시간 기준)부터 1시간 씩 방송되는 ‘오라일리 팩터’는 매일 평균 200만 명이 시청하며 2014년부터 2년 동안에만 무려 4억4600만 달러(약 5129억 원)의 광고 수입을 안겨준 폭스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그는 게스트로 등장한 유명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을 하면 현직 대통령이라도 가차 없이 말을 끊고 몰아붙인다.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 출연한 오바마 전 대통령도 그의 거친 진행에 진땀을 흘렸다.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해 “조그맣고 뚱뚱한 사람이 위아래로 뛰기만 한다”고 혹평하고 흑인 여성의원의 가발을 비하하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으로도 유명한 그는 누구일까.



○ 아일랜드계 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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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일리는 1949년 뉴욕 시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 후손으로 태어났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가톨릭 신자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줄곧 가톨릭계 학교를 졸업했다. 이는 그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7년 그는 뉴욕 주 매리스트 칼리지에 진학해 역사를 전공한다. 역시 아버지의 뜻이었다. 학내 신문 ‘더 서클’의 기자로 활동한 그는 졸업 후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의 한 가톨릭계 고등학교에서 2년 간 역사와 영어를 가르쳤다.

1970년 대 후반의 오라일리 모습


1973년 역시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많이 사는 보스턴으로 이주해 보스턴대에서 저널리즘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당시 동급생이 오라일리 못지않은 ‘막말 방송인’으로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 하워드 스턴(63)이다. 둘은 학창 시절부터 친했다. 오라일리는 종종 “나보다 키 큰 유일한 학생이 스턴이었기 때문”이라고 농담한다.


○ 방송계 입문

1975년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의 작은 지역 방송사에서 앵커 겸 기상 캐스터로 일한다. 이후 5년 간 오리건 주 포틀랜드,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 등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무명 방송인으로 지냈다.

1980년 고향 뉴욕으로 돌아온 오라일리는 CBS 아침 뉴스팀에 뽑혀 유력 언론의 심장부에 입성한다. 당시만 해도 간판급 진행자가 아니었던 그는 1986년 기회를 잡는다. 헬기 사고로 숨진 ABC 기자 조 스펜서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먼저 간 동료를 두고 절절한 추도사를 읊는 오라일리의 모습을 본 당시 ABC 뉴스담당 사장이 그를 스카우트해 프라임타임 뉴스 진행을 맡긴다. 그는 ABC의 간판 프로 ‘굿모닝 아메리카’ ‘나이트라인’ ‘월드뉴스투나잇’ 등을 거치며 전국구 방송인으로 발돋움한다.
CBS 간판 프로그램 ‘인사이드 에디션’을 진행하는 오라일리


1989년 CBS로 돌아온 그는 이 곳에서도 대표 프로그램 ‘인사이드 에디션’의 진행을 맡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독일 현지에서 생생한 르포를 전했고, 한 때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 살해사건의 범인 조엘 스타인버그와 단독 인터뷰를 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1994년 7월 오라일리는 지쳤다며 돌연 모든 방송에서 사퇴한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진학해 공공행정 석사를 딴 그는 ‘싱가포르의 마약 강제치료’에 관한 논문을 쓴다. 이 때의 경험은 그가 방송 일을 병행하면서도 거의 매년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는 역사학 전공자답게 각종 ‘~죽이기(Killing ***)’ 시리즈를 펴냈다. 링컨 죽이기, 케네디 죽이기, 예수 죽이기 등 역사적 인물에 대한 본인의 해석을 곁들인 이 책들은 수백만 권이 넘게 팔렸고 오라일리에게 부, 명예, 유명세를 추가로 안겨줬다.
오라일리가 쓴 베스트셀러 ‘킬링 케네디’의 표지


○ 오라일리 팩터

1996년 그는 당시만 해도 신생 케이블이었던 폭스로 이직한다. 전미 시청률 1위를 달리는 지금과 달리 당시 폭스의 입지는 그야말로 미미했다. NBC, ABC, CBS 3대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업계 안에서조차 CNN의 위상에 훨씬 못 미쳤다.

1996년 10월 그는 ‘오라일리 팩터’를 시작했다. 유명 게스트를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그의 진행 방식은 당시만 해도 미 공중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였다.

2006년 9.11테러 희생자의 아들 제레미 글릭이 등장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반대한다는 글릭을 향해 오라일리는 “그 놈들이 네 아버지를 죽였어. 그런데도 아프간 침공을 반대해?”라고 소리치다가 급기야 “닥쳐. 닥치라고(shut up, shut up)”라는 막말을 일삼는다.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너보다 내가 911에 대해 더 화가 난다”는 망발도 뒤따랐다.



▲ 제레미 글릭에게 막말을 일삼는 오라일리

오라일리는 2005년부터 중기 및 만삭 임산부에게 중절 수술을 해 준 의사 조지 틸러를 ‘아기 살인자’라고 집중 공격했다. 2009년 5월 극단적 낙태 반대론자 스콧 로더가 틸러를 살해한다. 당시 진보 성향 미디어 비평가들은 틸러에 대한 오라일리의 막말이 로더의 극단적 행위를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오라일리 본인도 “내가 틸러를 ‘아기 살인자’라고 부른 것은 그것이 ‘진실(true)’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진행 방식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이 거듭될수록 시청률은 쑥쑥 올랐다. 최고점에 달했던 2009년 평균 310만 명의 시청자가 매일 이 쇼를 봤다. ‘106주 연속 미 케이블 뉴스 시청률 1위’도 오라일리 팩터가 지닌 독보적 기록이다. 미 경제전문매체 ‘더리치스트’는 폭스가 매년 오라일리에게 2000만 달러(약 230억 원) 내외의 출연료를 지급하며 그의 재산이 7000만 달러(약 800억 원)가 넘는다고 보도했다.


○ 성희롱·거짓 취재·가정폭력 등 논란

오라일리 밑에서 일하다 그에게 성희롱 소송을 제기한 앤드리아 매크리스

그의 이름값이 높아지면서 각종 추문도 속속 뒤따랐다. 2004년 오라일리 팩터의 프로듀서 앤드리아 매크리스가 그를 성희롱으로 고소하며 6000만 달러의 천문학적 배상을 요구했다. 매크리스는 그가 성희롱을 일삼고 폰섹스를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대화 내용을 녹음한 매크리스는 폭스로부터 약 9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고 회사를 그만뒀다.

오라일리는 2015년 2월 ‘1980년대 초 CBS 재직 당시 전쟁 취재담을 부풀렸다’는 의혹에도 휩싸였다. 그는 2001년 자서전 ‘노 스핀 존’, 2003년 이라크전 당시 각종 인터뷰와 방송, 2013년 보스턴 폭탄테러 관련 방송 등에서 수차례 “포클랜드, 북아일랜드, 중동 등 세계적 분쟁 지역을 돌아다녔고 3차례 목숨을 잃을 뻔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CBS 동료들이 “CBS는 포클랜드에 기자를 파견한 적이 없다. 전쟁 구역에 간 적이 없는 오라일리가 뻔뻔한 거짓말을 한다”고 공격하자 수세에 몰렸다. 파문이 확산되자 그는 “전쟁을 취재했다고 했을 뿐 해당 지역에 있었다고 한 적은 없다”고 한 발 물러섰으나 군색한 변명이란 비판만 커졌다.

비슷한 시기 그는 전 부인과의 송사에도 휘말렸다. 1996년 17세 연하 PR 전문가 모린 맥필미와 결혼한 오라일리는 2011년 이혼 후 가정폭력 성향 때문에 두 자녀의 양육권을 잃었다. 그의 전 부인은 “오라일리가 내 목을 조르고 계단에서 나를 질질 끌었으며 자녀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봤다”고 주장했다.

이혼 후 그의 성희롱 스캔들은 더 자주 발생했다. 출연자나 공동 진행자였던 웬디 월시, 줄리엣 허디, 앤드리아 탄타로스 등의 여성들이 오라일리의 성희롱을 이유로 오라일리 개인과 폭스에 속속 소송을 제기했다. 매크리스가 제기한 첫 소송 때와 마찬가지로 합의금을 주고 무마했지만 그의 이미지와 공신력은 상당부분 훼손됐다.


○ 바람 잘 날 없는 폭스뉴스

오라일리 사태에 대해 폭스의 모회사 뉴스 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 회장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 지도 관심이다. 오라일리가 폭스뉴스를 미 케이블 방송 1등으로 만든 일등공신이어서 그를 섣불리 징계하긴 어려울 것이란 의견과, 지난해 여성앵커 희롱 사실이 밝혀져 갑자기 사퇴한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회장의 추문이 가시기도 전에 오라일리 사태까지 가세한 만큼 폭스가 모종의 조치를 취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맞선다.

일단은 전자가 우세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일 올해 연말 만료 예정이었던 오라일리와 폭스의 계약이 최근 갱신됐다고 보도했다. 천하의 ‘미디어 황제’ 머독이라 해도 1년에 2000~3000억 원의 광고 수입을 올려주는 간판 진행자를 해고하긴 어렵다는 의미다.

반론도 있다. 오라일리와 에일스 전 회장 외에 최근 폭스 고위 임원들이 속속 추문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부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전직 임원 프란치스코 코르테스는 역시 합의금을 주고 이를 무마했고, 백인 여성 진행자 주디스 슬레이터는 두 명의 흑인여성 부하로부터 인종차별적 행동으로 소송을 당해 회사 이미지 차원에서라도 폭스가 대책을 마련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오라일리 본인은 당당하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다른 유명인과 마찬가지로 나는 늘 ‘부정적 여론을 피하고 싶으면 돈을 달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가 과거 거짓취재와 가정폭력 논란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스캔들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결국 미국 시청자들에게 달려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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