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국민이 하라는 일 하라

  • 입력 2004년 10월 25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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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수도 이전 위헌(違憲) 결정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중대한 타격’이 됐음은 분명하다. 노 대통령이 수도 이전 반대를 자신에 대한 불신임운동 내지 퇴진운동이라고 규정했던 만큼 ‘정치적 좌절’의 파장 또한 넓을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집권한 지 2년도 채 안돼 ‘레임덕 현상’을 부를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대통령 및 집권세력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 나라에 좋지 않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또다시 무리수로 승부를 걸려 한다면 남은 임기 내내 나라는 시끄럽고 경제는 결딴날 것이다. 그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어정쩡한 수용’이나마 헌재 결정을 받아들인 것은 다행이다.

▼위임받은 권력이다▼

비록 현 정권을 만들어낸 동력(動力)이 ‘혁명적 열정’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정말 크게 한숨을 돌리고 냉정을 찾아야 한다. 도덕적 우월주의와 비주류의 피해의식이 뒤섞인 고약한 권력 정서에서 벗어나야 한다. 집권하는 동안 나라를 통째로 바꿔내야 한다는 ‘독선(獨善)의 소명(召命)의식’이 빚어내는 조급함과 초조함을 버려야 한다.

헌재가 ‘처음 들어보는 이론’인 관습헌법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느니, 관습헌법이 성문법인 헌법 개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등의 법리적 해석 논란은 부차적인 문제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절대 다수가 헌재 결정에 찬성한다는 사실이다. 헌재가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고 비난하는 것도 그것이 민의(民意)를 반영한 이상 시빗거리가 될 수 없다. 더구나 이번 헌재 결정이 대의(代議)민주주의와 입법부의 권능을 훼손했다는 여권의 논리는 낯 뜨거운 얘기가 될 수 있다. 그런 논리라면 지난 5월 헌재는 국회가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했던 대통령 탄핵안을 두말없이 받아들였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이제는 사소한 시비를 떠나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이란 국민이 일정기간 집권측에 위임한 것이다. 따라서 다수 국민이 이러저러한 권력행사는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그들을 최대한 설득해서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최소한 그런 절차적 노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지도자가 할 일이요, 정치 리더십의 요체다. 설득하고 비전을 제시해도 다수 국민이 안 된다고 하면,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하면, 그 일보다 다른 일이 급하다고 하면 안 하는 게 옳다. 지금은 ‘우중(愚衆)의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현 정권은 이를 거슬러 왔다. 자신들이 하려는 일은 죄다 ‘개혁’이고, 그것에 반대하면 몽땅 ‘반(反)개혁’이라는 격이다. 더구나 ‘반개혁’의 사회적 의제를 ‘특정 신문(동아 조선)’이 악의적으로 생산해낸다고 강변하고 증오한다. 국무총리에서부터 집권당 의장, 장관들로 이어지는 일련의 발언에서 집권측의 ‘눈먼 증오’를 읽을 수 있다.

▼‘이기고 지는 게임’ 아니다▼

물론 집권측도 특정 신문의 논조에 불만을 가질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신문에 대한 편협한 증오심으로 그들 신문의 시장점유율을 억지로 제한하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특정 신문 때문에 정권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말인가. 국민 다수가 현 정권에 등을 돌린 것은 집권측의 ‘미숙한 열정’이 낳은 오만과 편견, 그리고 정치를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여긴 듯 끝없이 갈등과 분열을 만들어내는 저급한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이, 집권측이 ‘그들만의 개혁’에 대한 조급함과 초조함에서 해방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거듭 말하지만 다수 국민이 하지 말라고 하면,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하면, 그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고 하면, 안 해야 하고 못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의 올바른 행사다. 이제라도 국민이 하라는 일과 하지 말라는 일을 구분하고, 하라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노무현 정권에 아직 시간은 있다.

전진우 논설위원 실장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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