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노벨 평화상 ‘중국 민주화’ 상징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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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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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는 1989년 톈안먼 시위 때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의 무력진압 지시를 거부하고 실각한 후 16년간 가택연금 생활을 하다 85세로 사망했다. 그의 사후(死後)에 구술 녹음 테이프를 해외로 빼돌려 출간한 회고록 ‘국가의 죄수(國家的罪囚)’는 톈안먼 사태의 처리를 둘러싼 권력층 내부의 움직임에 관한 생생한 증언과 함께 중국의 정치개혁에 관한 신념을 담고 있다.

자오쯔양은 이 책에서 덩샤오핑이 주창한 개혁개방은 국가 근대화, 민주화가 아니라 공산당 일당 독재를 견지한다는 전제 아래 국가기관의 활력과 효율을 달성하기 위한 행정개혁이라고 단언한다. 덩은 서방국가의 다당제(多黨制)와 삼권분립, 의회제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소수의 몇 사람이 논의해 집단통치하는 지배구조를 좋아했다고 자오쯔양은 회고했다.

자오쯔양은 “한 국가가 현대화를 실현하려면 시장경제를 실시해야 할 뿐 아니라 반드시 의회민주제라는 정치제도를 실시해야 한다”면서 “의회민주제가 없이는 건강한 시장경제도, 현대적인 법치주의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의 진단은 중국의 미래에 대한 예언처럼 들린다. “20세기에 나타난 이른바 신흥 민주제도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대다수 역사 무대에서 이미 퇴장했다. 오히려 서구의 의회민주제가 그 생명력을 보여준다.”

“시장경제 의회민주제 동행 발전”

중국 공산당 정권은 톈안먼 시위를 군사력으로 유혈 진압했지만 이후 21년 동안 민주화 요구를 완전히 침묵시키지 못했다. 중국의 반체제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류샤오보가 주 집필자인 ‘08헌장’은 인터넷에서 1만 명이 넘게 서명했다. 체코에서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민주화 후 대통령 당선)이 중심이 돼 공산당 정권에 저항한 77헌장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77헌장이 프라하의 봄을 가져왔듯이 08헌장에는 베이징의 봄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2008년 12월 발표한 이 헌장은 자유 인권 평등을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라고 선언하고 직접선거, 사법부 독립, 공산당 일당 독재의 종식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류샤오보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에 담긴 내용을 요구했을 뿐인데 이 선언과 관련해 정부를 전복하려 한 죄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국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류샤오보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라는 결정적인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최근 정치개혁, 언론자유, 민주주의를 보통 때보다 빈번하게 역설하고 있다. 10월 3일 방영된 CNN 인터뷰에서는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인민의 열망과 욕구는 억누를 수 없는 것이며, 나는 중국의 정치체제 개혁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 총리의 발언 내용이 서구식 의회민주주의나 다당제 선거를 통한 권력의 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어디까지나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라는 토대 위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경제발전이 이뤄지고 국민소득이 높아진 후 맞을 다음 단계의 도전이 정치적 민주화 요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민주화 요구에 방어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인권, 자유, 민주주의를 선도적으로 치고 나가 이론적 고지를 선점하려는 전략이다.

류샤오보는 해외에 더 알려진 인물이다. 중국인들은 공안당국의 철저한 검열로 류샤오보의 저작이나 민주화 운동을 거의 알지 못한다. 한 나라가 민주화로 나아가자면 체코의 하벨이나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같은 상징적 인물이 필요하다. 류샤오보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당장 정치적 폭풍을 몰고 오지는 않겠지만 21세기에 걸맞지 않은 권위주의 정부를 가진 중국의 내적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중국학자들도 사적인 자리에서 “정치적 민주화를 동반하지 않은 경제발전은 빈부격차 심화 같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경제의 지속적 발전도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전한다.

중국 민주화 후폭풍 맞을 북한

우리가 중국의 민주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인구 13억 명의 대국이 가져올 세계사적 변화와 함께 한반도에 미칠 후폭풍 때문이다. 중국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도 60년 전 항미원조(抗美援朝)의 시기에 고착돼 있다. 중국은 북이 천안함 폭침을 저지른 증거가 없다고 강변하는가 하면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에 대해서도 “인민의 자주적 선택”이라며 비호한다. 중국 공산당 정권이 현재로선 철옹성 같아 보이지만 5∼10년 뒤 중국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중국 정부가 낡은 권위주의 체제의 갑옷을 벗고 세계 보편적 가치를 수용할 때라야 21세기의 시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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