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갈등 풀 새 카드 없어… 한-일 ‘지금은 만날때 아니다’ 판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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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한일정상회담 무산]日 ‘양국 기업이 위자료’ 제안 거절
선거 앞둔 아베 ‘강공’ 가능성 높아… 당국자 “만나면 얼굴만 붉힐수도”
靑 “현장서 日 요청땐 언제든 회담”… 관계악화 제동 걸 여지 남겨둬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왼쪽 사진)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일본 오사카에서 28, 29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회담 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청와대는 G20 계기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왼쪽 사진)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일본 오사카에서 28, 29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회담 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청와대는 G20 계기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가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놓고 다시 한번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한일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대치 전선에서 물러날 뜻을 내비치지 않으면서 결국 정상회담 무산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 ‘평창 회담’ 반복 우려한 韓日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마주 앉은 것은 지금까지 총 5차례. 취임 첫해인 2017년 7월과 9월의 회담은 비교적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그해 말부터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양국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런 기류가 가장 심했던 것이 지난해 2월 강원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열린 회담이었다.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서로의 견해차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후 지난해 5월 일본 도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남북 대화 국면으로 비교적 부드러웠지만 대화 국면이 멈춰선 지금 시점에서는 두 정상이 만나도 지난해 평창 회담처럼 아무 합의 없이 얼굴만 붉히고 헤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이 만나더라도 정작 별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헤어질 수 있다는 판단도 이 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양국 기업의 출연금으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정부 중재안을 일본이 당일 공개적으로 거절한 상황에서 양국 모두 이 문제를 진척시킬 만한 새로운 카드가 없다. 여기에 회담이 열리더라도 7월로 예정된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내 여론을 의식한 아베 총리가 ‘강공 드라이브’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청와대에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만나서 감정의 골만 깊어지느니 차라리 이번에는 만나지 말자고 양국이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 한일관계 출구 전략 고심하는 靑


청와대는 회담 무산과 관련해 일본을 향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만날 준비가 돼 있지만 일본은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며 회담 무산의 책임을 일본에 돌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일 정상회담 무산으로 “양국 관계가 어두운 터널에 들어섰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라는 다자외교 무대에서 “한일 관계가 좋지 않다”는 점을 공식화하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회담 무산의) 가해자가 마치 한국이 된 것처럼 일본이 보고 있기 때문에 이 프레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일 정상이 서로) ‘나를 안 만나줬단 말이지’라는 감정을 갖게 된다면 양국 관계에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청와대도 G20 기간 중 한일 정상 간 ‘접촉’ 가능성은 열어뒀다. 청와대는 “현장에서 만약 일본이 준비돼서 만나자고 요청이 들어오면 우리는 언제든지 아베 총리를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청와대 관계자의 입장이 나오기 전인 이날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거절한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다. 외교부로서는 청와대와의 엇박자 논란과 ‘외교부 패싱’ 지적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상회담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 강 장관은 “외교부가 상대국 외교당국을 통해 듣는 것과 청와대 측에서 갖고 있는 선을 통해 듣는 것과 상당히 긴밀히 공유하고 있지만 시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문 대통령도 G20 기간에 일본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보낼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한 청와대 참모는 “이번이 (한일 정상회담의) 적기가 아니라는 것이지 앞으로도 만나지 않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한기재 기자
#징용갈등#강경화#김현종#g20#한일정상회담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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