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징용 94세 이춘식 옹 “판결 나온다니 기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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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0월 30일 11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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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재상고심 위해 상경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재상고심 판결이 30일 진행되는 가운데 유일한 생존 원고인 이춘식씨가 이날 오전 광주송정역에서 행신행 KTX를 타기 위해 발검을을 옮기고 있다.2018.10.30/뉴스1 © News1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재상고심 판결이 30일 진행되는 가운데 유일한 생존 원고인 이춘식씨가 이날 오전 광주송정역에서 행신행 KTX를 타기 위해 발검을을 옮기고 있다.2018.10.30/뉴스1 © News1
“판결이 나온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

아흔을 훌쩍 넘은 노구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오른손으론 지팡이를 짚고 왼손은 수행원의 손을 잡고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재상고심 판결이 열리는 30일, 이번 재판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씨(94)는 오전 8시45분쯤 광주 송정역에 도착했다.

KTX를 타고 재판이 열리는 서울로 향하는 길, 검은색 외투에 네이비 정장바지, 체크 머플러, 갈색 체크모자와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이씨에게 ‘서울 가시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고령에 귀가 잘 안들리는 이씨를 위해 수행원이 목소리를 키워 다시 묻자 “판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아주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까지 먼길 가는 길이지만 아침 식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는 “평소 소식하기 때문에 아침을 먹지 않는다”며 다시 웃었다. 이씨는 대합실에 앉아 잠시 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KTX로 이동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오후 2시에 이씨와 여운택·신천수·김규수씨(이상 사망)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2005년 구 일본제철 후신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을 선고한다.

소송제기 13년여만이고, 대법원에 재상고심이 접수된 이후 5년2개월만이다. 재판이 지연되며 이씨를 제외한 원고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2005년 신일본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강제노역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94)가 “살아있을 때 법원의 판결을 받고 싶다“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2018.9.19/뉴스1 © News1
2005년 신일본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강제노역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94)가 “살아있을 때 법원의 판결을 받고 싶다“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2018.9.19/뉴스1 © News1
광주에 사는 이씨는 1924년에 태어났다. 17살이던 1941년 일본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보국대에 지원했다.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올 수 있다는 부푼 꿈은 일본에 도착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이씨는 일본의 신일본제철의 가마이시 제철소에 배치돼 하루 12시간씩 철재를 나르는 단순 노동을 해야 했다. 기술을 배울 기회는커녕 임금조차 주지 않았다.

특히 뜨거운 철재 위로 넘어져 생긴 큰 흉터가 지금까지 남아있을 만큼 배를 심하게 다치기도 했다.

이씨는 일본이 패망하자 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돈을 받기 위해 가마이시 제철소를 다시 찾았지만 전쟁으로 이미 폐허가 돼 있었다.

이씨 등은 2005년 한국에서 소송을 냈지만 1,2심 재판부는 청구를 기각했다. 앞서 동료들이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것을 두고 “일본의 확정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고 소멸시효도 완성되지 않았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돌려보냈다.

다시 열린 2심은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일본 기업이 불복해 사건은 2013년 8월 대법원에 다시 접수됐다.

이후 5년여 판결이 지연되다 ‘양승태 사법부’가 재판거래를 위해 외교부 의견서를 독촉해 제출받는 등 고의로 판결을 늦춘 정황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포착됐다. 이처럼 의혹이 불거진 뒤인 올 7월 사건은 전합에 회부됐다.

이씨는 지난달 19일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논란과 관련된 기자회견에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재판의 결과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며 “살아 생전에 재판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씨의 나이는 호적상 1924년생으로 만 94세, 한국나이로 95세다. 이씨는 98세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살아 생전 재판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이씨의 바람대로 대법원은 이날 판결한다. 이왕이면 승소 판결이 나오는 게 이씨의 한을 풀어주는 게 아닐까.

(광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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