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성찰의 인문학, 재소자 삶 바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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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강의’ 이끈 배철현 교수… 수업내용 담은 ‘낮은 인문학’ 출간
“40명 정원에 100명 신청 등 열의… 살인범, 눈물의 고해성사도”

2014년 11월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에서 열린 재소자 인문학 강의 모습. 동아일보 DB
2014년 11월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에서 열린 재소자 인문학 강의 모습. 동아일보 DB
“이제야 아내와 자식을 이해하고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됐다.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그동안 부족해 용서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10월 살인죄로 서울 남부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한 재소자가 눈물로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열린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 ‘마아트’(Maat·도(道)를 뜻하는 고대 이집트어)의 마지막 수업 현장에서였다. 마아트 프로그램의 주임교수인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54·사진)는 “교도소에서 수십 번 인문학 강연을 했지만 마지막 수업에서 살인을 저질렀던 재소자의 눈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2013년 7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서울 남부교도소에서 진행한 60회의 인문학 강연을 ‘낮은 인문학’이란 책으로 엮어 지난달 19일 출간했다. 배 교수를 포함한 서울대 교수 10명은 무보수로 한 기수마다 10주씩 강연을 진행했다. 총 6기로 진행된 강연은 매주 금요일 철학과 역사학, 종교학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 인도, 라틴아메리카 등 각 나라의 문학과 문화 등 인문학 전반에 관한 내용으로 꾸려졌다.

재소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정원이 40명에 불과한 강의에 1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려 매회 2∼3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배 교수는 “수강자는 성폭행범과 살인자부터 전직 장관, 은행장, 대학 총장 등 사회 저명인사까지 다양했다”며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긴 호흡으로 이어나가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재소자들이 더 열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인문학 강연 녹화본이 전국 교도소에 방영되기도 했다. 이후 법무부는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배 교수는 인문학이 가장 효과적인 교정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영어의 몸이 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틀렸으니 바로잡으라는 교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에게 스스로 자신을 보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며 “수용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기 위해 ‘성찰’과 ‘생각’이란 주제로 강의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재소자들의 현재와 미래 모습을 차별화해 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마아트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은 예산 등의 이유로 지난해 10월 60회를 끝으로 종료됐다. 배 교수는 “정부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 서울대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며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문학 강의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배철현 교수#낮은 인문학#재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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