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파이어니어 5]PC도사 ㈜칵테일 대표 이상협

  • 입력 1999년 1월 26일 19시 46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부근 구의소프트웨어지원센터 301호. 소프트웨어 하나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려는 스무살짜리 고졸 벤처기업사장 이상협(李相協·㈜칵테일 대표)의 꿈이 익어가는 곳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미친 자만이 살아남는다. 세계 최고가 되자. 불가능은 없다’는 표어가 먼저 눈에 띈다.

“벤처기업은 ‘좁고 깊게’ 승부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손대거나 남들 따라가면 실패합니다. 하루에도 수십개 회사가 망하고 새로 생기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한 분야에 1등을 못하면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벤처기업의 운명입니다.”

이사장은 요즘 신바람이 났다. 작년말 청소년과 대학생층을 겨냥해 내놓은 신제품 ‘칵테일 멀티미디어 친구들’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

‘칵테일’은 인테넷 홈페이지나 CD타이틀, 컴퓨터 가족앨범을 직접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 e메일을 보낼 때 글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나 그림 음악을 넣어 ‘멀티미디어’ 편지를 띄울 수도 있다.컴퓨터 실력이 있는 학생은 매뉴얼을 펼쳐놓고 하루만 익히면 사용할 수 있다고.

해외시장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삼성물산을 통해 컴프USA 마이크로웨어하우스 등 미국의 컴퓨터 유통업체들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9백달러를 넘는 외국제품과 성능은 비슷하면서 가격은 1백30달러로 싸 호평을 받고 있다.

미국시장을 위해 회사이름도 화이트미디어에서 ㈜칵테일로 바꿨다. ‘화이트’란 이름이 인종차별에 민감한 미국 사회에서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 ‘칵테일’은 영어 일어 등 8개 국어로 번역돼 세계로 나가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때 컴퓨터를 처음 만난후 지금까지 10년간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컴퓨터를 두드리는 ‘컴퓨터광’이다. 고교시절 프로그램을 짜느라 밤을 새우고 수업시간에는 눈뜨고 졸던 그에게 학교는 ‘지옥’이었다.

전교 4등과 반 46등을 넘나들던 성적. “꼭 대학을 가라”는 어머니의 고집을 ‘3년전쟁’ 끝에 꺾었다. 이후 어머니는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그가 결석하는 날이면 어머니가 대신 학교에 가서 “상협이가 중요한 컴퓨터 공모전에 낼 프로그램을 짜고 있으니 봐달라”며 사정했다.

남들이 입시공부에 몰두하던 고3 가을에 그는 혼자 ‘광개토대왕’이란 프로그램을 개발, 전국PC경진대회 대상을 받았다. 부상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례입학자격도 주어졌다.

그러나 대학을 포기하고 창업을 택했다. 애써 개발한 ‘광개토대왕’이 사장되는 것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고 한다.

18세에 화이트미디어란 회사를 세우고 ‘광개토대왕’을 ‘칵테일’로 이름바꿔 상품화했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수억원을 제시하면서 프로그램을 팔라고 했지만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에 승부를 걸었다.

작년 실적은 수출 3만카피, 내수 5만카피. 남들은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목표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이사장은 자주 밤을 샌다. 직원 11명의 작은 회사지만 오전에 영업팀 회의를 주재하고 오후에는 개발팀과 상품기획이나 디자인 매뉴얼작업을 상의한다. 프로그래밍은 그의 몫. 자연 밤늦게 일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

자신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담배와 술을 금지한다.입사계약서에 ‘술과 담배를 하면 당장 퇴사시킨다’는 규정이 있다. 거래처와 상담시에도 절대 접대를 하지 않는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면 100% 성공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는하루 두 세 시간씩 인터넷과 PC통신을뒤진다.굳이세상을 돌아다니지 않아도사이버공간에서고객과 대화하면서 뉴스나 상품정보를 얻는 것으로 불편함이 없다.

운동이라야 새벽까지 일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사무실에서 줄넘기 2백번이 고작. 노래방에 가도 유행하는 댄스곡이나 랩송은 ‘당연히’ 모른다. 여자친구도 없다. 일에 파묻혀 살다보니 그런 생활이 ‘사치’라고 느껴진다.

“전세계 컴퓨터에 내 프로그램이 깔리는 날이 반드시 올겁니다.”

학벌도 나이도 묻지 말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가 되는 날을 지켜봐달라는 스무살 청년의 세상을 향한 당찬 출사표다.

▼ 이상협은 누구?

79년 대구에서 이대수 이현주씨의 1남2녀중 첫째로 출생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는 ‘지진아’였지만 집에서는 두 여동생을 열광시킨 게임왕. 9살때 컴퓨터를 처음 접한후 완전 매료됨

△고2때 전국PC경진대회 대상. 1년후 ‘광개토대왕’으로 공모부문 대상을 차지

△97년 대구 청구고 졸업. KAIST 입학자격을 포기하고 화이트미디어란 벤처기업 설립. ‘칵테일97’로 신소프트웨어 상품 대상 수상

△98년 ㈜칵테일로 회사명을 바꾸고 미국 시장에 진출.

〈김학진기자〉jea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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