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우 수첩속 박근혜 “이명박 좌파척결 한 일 없어 나라 비정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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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前정무수석, 블랙리스트 공판서 증언… 특검은 업무메모 공개

박준우 전 정무수석
박준우 전 정무수석
‘재벌들이 종북에 줄을 서 사정 서둘러야…’ ‘강한 적개심 갖고 친북 척결…’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좌파와) 싸우자…’.

박준우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64)이 2013년 8월∼2014년 6월 청와대에 근무하며 회의 내용을 정리한 업무수첩에 나오는 문구들이다. 박 전 수석은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와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에서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78·구속 기소)의 말을 적어 뒀다.

박 전 수석의 업무수첩은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재판에서 공개됐다.

○ ‘문화예술계 좌편향 용서 안 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날 재판에서 김 전 실장이 정부 차원에서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단체 등을 압박하고 불이익을 주려 한 정황이 담긴 박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유력한 증거로 제시했다.

이 수첩의 ‘2013년 9월 9일 실수비’라고 적힌 부분에는 ‘천안함 영화 메가박스 상영 문제, 종북 세력 지원 의도, 제작자 펀드 제공자: 용서 안 돼’ ‘이석기 사건이 스타트’ ‘각 분야의 종북·친북 척결 나서야’ ‘강한 적개심 갖고 대처’ 등의 문구가 기록됐다. 비서실장에 임명된 지 한 달이 좀 넘은 김 전 실장의 발언이라고 한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 전 수석은 “김 전 실장이 회의 때마다 ‘나라가 많이 좌편향돼 있다’는 언급을 자주 했다”며 “문화예술계에서 대통령을 조롱하고 정부를 비방하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논의도 많았다”고 증언했다.

‘2013년 12월 19일 당 최고위원 송년 만찬’이라는 메모에는 ‘문화계 권력 되찾아야’ ‘MB 때 한 일 없어’라고 기재했다. 박 전 수석은 “만찬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이 한 말을 기록한 것”이라며 “우파가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좌파 척결에 한 일이 없어 나라가 비정상이라며 개탄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2014년 3월 28일 실장 티타임’ 메모에서는 ‘영화 산업 문제점: 공정위, 검찰’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특검은 “영화 산업의 좌편향을 공정거래위원회나 검찰을 통해 시정해야 한다고 언급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공정위는 2014년 12월 CJ CGV와 롯데시네마를 ‘스크린 독과점’ 혐의로 고발했다. 2년 넘게 수사한 검찰은 올 3월 불기소 처분했다.

○ ‘역사 교과서는 전쟁 임하는 자세로’

김 전 실장이 역사 교과서 문제가 진영 간 이념 대결이며 수정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정황도 수첩에 담겨 있다. ‘2013년 10월 2일’ 메모를 보면 ‘교과서는 이념 대결 문제’ ‘간단치 않다. 강력한 의지 있어야’ ‘역사는 국민의 혼-역사 왜곡은 혼을 오염시키는 것’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하지 않으면 박 정권 5년 내 척결 곤란’ 등이 그것이다.

‘2014년 1월 8일’ 메모에는 ‘전교조의 악랄한 공격으로 좌절’ ‘애국 건전세력 기반 약화 결과’ ‘치밀하게 준비 안 하면 제2, 제3의 교학사’라고 기재됐다. 당시 우편향 및 부실 논란의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이 좌파 진영의 반발로 철회한 상황을 두고 한 말로 보인다.

한편 이날 박 전 수석은 수첩 내용에 대한 진술을 인정하면서도 “김 전 실장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기울어지는 걸 바로잡자는 강한 결의를 보여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실수비에서 청와대 수석들 사이에서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말했다. 박 전 수석은 또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후임으로 왔을 때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두 사람의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조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을 알게 됐다는 특검 조사와는 다른 내용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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